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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이석호 부산·소설가(총선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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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이석호 부산·소설가(총선현장에서)

입력
1992.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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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전 내놓는 후보는 왜 없나누군가는 정치를 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제품을 생산해야만 한다. 또 어떤이는 물건을 팔아야 하고 농부는 씨앗을 뿌려야 한다.

이같이 각분야에서 국민 각자가 맡은 직분과 일을 묵묵히 수행해 왔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분야,나아가 많은 불협화음을 내고있는 이 자그마한 나라가 그런대로 모양새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

사회 전분야중 유독 정치만이 상대적으로 다른분야에 비해 특별히 커보이거나 요란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정치의 속성상 어차피 그런 미친듯한 열정과 분위기로 몰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때문일까.

심하게 얘기하면 지금 우리사회는 몸체에 비해 머리만이 지나치게 커버린 가분수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무슨 무슨당의 전국구 후보 몇번이 어떤성향의 인물이며 아무개당의 누구는 부동산이 얼마더라는 식으로 미주알 고주알 꿰차고 앉아있어야 말발이 선다.

게다가 정치얘기만 나오면 금방 허옇게 거품을 무는게 우리네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정치에 관심들이 많은가. 그것은 그만큼 우리민족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발전지향적 성정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니면 각계각층의 응어리진 욕구불만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반도의 국민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민족이 지나치게 다혈질이기 때문일까.

부산 동구의 합동유세는 비가 멈춘 수정국민학교에서 열렸다.

눅눅한 땅바닥에 신문지 쪼가리를 깔고앉은 청중·운동원들은 대략 3천여명 되는 것같다.

13대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든 허삼수 후보와 현직의원 노무현 후보의 한판 접전에 국민당의 윤소년 후보와 무소속의 박상욱 후보가 가세하고 있다.

허·노 두사람의 4년만의 재대결일 뿐만 아니라 3당합당과 야당통합에 대한 국민의 심판장이기도 하며 5공 초기의 사정수석 비서관과 운동권 출신 소장의원과의 대결장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13대 총선에서는 노후보가,14대 총선에선 허후보가 YS의 지원하에서 선거를 치르는 상황이므로 과연 YS의 영향력이 어느정도인가를 시험하는 무대로 주목받는 상황이다.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운동원들의 연호소리 등 유세장의 모습은 소란하고 산만스러웠다.

후보들은 후보들대로 각각 상대후보를 비방하거나 반박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 어디에도 참신한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는 없었다. 듣던대로 남발성 공약도 더러 들려오는 것은 예전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 남발성 공약으로 말하면 상당히 그 뿌리가 깊은 것으로서 듣는 사람에게 실로 묘한 뉘앙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국회의원 한사람이 어떻게 12만4천8백여명의 유권자가 거주하는 한개 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유권자들은 그런 것을 기대해서도 안되겠거니와 그런 공약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또한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면 마땅히 지역구민의 가려운데를 긁어주기도 해야 하겠지만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민의를 대표하는 선량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나라의 정치수준은 결코 그 국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남발성 공약이나 듣고 앉아있어야 하며 케케묵은 과거지사만을 들추어가며 서로 물고 뜯어야 하는가. 유권자들은 이제 그런 곰삭은 과거지사에는 식상해 있다. 그만큼 세상이 빨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각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한데 집결시킬 수 있는 미래의 비전. 누가 그런 것을 들고 나와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는 없을까.

태평성대일수록 국민은 정치나 위정자로부터 멀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는 분명 태평성대는 아닌 모양이다.

구중중하게 흐린 하늘아래 갑자기 한사내가 『배신하지 말아요』라고 외쳤다. 당신을 찍을테니 기대에 부응하라는 얘기였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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