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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아버지」 슈왈츠신부 선종/지난 16일 비서 지병 악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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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아버지」 슈왈츠신부 선종/지난 16일 비서 지병 악화로

입력
1992.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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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한국 첫발… 「소년의집」 설립등 각종사업/서울 빈소엔 「어엿한」 졸업생들 눈물의 발길35년전 한국에와 6·25 종전후의 폐허속에서 고아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던 「고아들의 아버지」 알로이시오 슈왈츠(한국명 소재건)신부가 지난 16일 필리핀 마닐라서 62세로 타계했다.

사제 서품후부터 평생을 바쳐온 고아교육사업을 한국에서 필리핀 등 해외로까지 확대,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슈왈츠신부는 루게릭병이라는 불치의 지병을 앓고 있었고 끝내 그 병으로 숨졌다.

슈왈츠신부가 한국 고아들과 인연을 맺은 것을 57년. 미워싱턴시 출신으로 메리놀 신학교를 졸업하고 57년 사제서품을 받은직후 부산 교구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슈왈츠신부는 가난과 질병에 찌든 전쟁 고아들의 재활을 위한 자선모금사업을 했다.

64년엔 마리아 수녀회를 설립,이곳 수녀들과 함께 고아 1백20명을 돌보던 슈왈츠신부는 70년 소년의 집을 부산 서구 암남동 빈민가에 설립,본격적인 고아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슈왈츠신부는 부산 시당국으로부터 인계받은 고아들외에 껌팔이,구걸을 강요받던 앵벌이들을 데려왔고 이들이 수용돼있던 보호소측에 거액의 「몸값」을 아끼지 않았다.

75년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도 소년의집을 개원한 슈왈츠신부는 자활기술교육까지 실시했다.

서울 소년의 집에는 유치부와 국민학교 과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부산엔 중·고교가 세워져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남학생에게 기계공업교육,여학생에게 전산교육을 실시하고 졸업후 취업까지 알선해 주고 있다.

소년의 집은 큰규모의 「가정」이다. 서울 소년의 집에 있는 2천5백여명의 고아들은 수녀 1백50여명이 각각 전담하는 대규모 가족형태의 생활을 하고 있다.

슈왈츠신부의 사랑의 손길은 일반 성인에게도 뻗쳤다. 서울과 부산에는 미혼모 재활시설인 모성원,빈민구호병원인 자선병원,수용시설인 갱생원 등이 차례로 설립됐다.

슈왈츠신부는 84년부터 고아교육사업을 해외로 확대,필리핀의 마닐라와 세부,실랑 등 3곳에 소년의집을 마련했으며 지난해에는 멕시코 찰코시에도 같은 시설을 지었다. 사업이 국제적으로 확대된 이후 슈왈츠신부는 각 소년의집을 1주일∼1개월 간격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나 슈왈츠신부는 89년에 이미 불치의병으로 알려진 루게릭병으로 진단을 받았다. 신체의 모든 근육이 마비되는 이 병으로 슈왈츠신부는 최근 팔·다리는 물론 기도와 식도의 근육까지 마비돼 식사와 말하는도 장애를 겪었다.

슈왈츠신부는 지난 2월초 메시코 소년의집에서 유언을 담을 비디오를 만들었다.

『이세상 모든 불우한 사람을 위해 단 1달러의 후원이라도 마다치 않겠다』는 것이 비디오에 담겨진 마지막 말이었다.

슈왈츠신부의 부음이 전해진 16일 밤부터 서울 소년의집 2층성당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새벽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소년의집 1기졸업생 장철원씨(30·상업)는 『아버지를 이렇게 빨리 잃줄 몰랐다』며 울었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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