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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스타 신발 만들듯 심혈/말 장제사 이규찬씨(이런직업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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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스타 신발 만들듯 심혈/말 장제사 이규찬씨(이런직업 아시나요)

입력
1992.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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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 안맞으면 경주마 치명상/말의 심리·영양상태까지 파악/갈기휘날리며 달릴땐 내가 출전한 듯아무리 우수한 육상선수라도 스파이크가 발에 맞지 않으면 잘 뛸 수 없듯이 뛰어난 경주마도 편자가 불편하면 제기량을 다 발휘할 수 없다.

경기 과천경마장에 근무하는 한국마사회 소속 장제사 이규찬씨(65)는 평생을 말의 발에 맞는 「신발」을 만들어 신겨왔다.

장제일은 쇠를 두드려 편자를 만들고 이것을 말굽에 박는 것이지만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한 일인 만큼 말의 심리상태까지 이해하고 호흡을 맞추는 고도의 감각을 필요로 한다.

이씨의 일은 대부분 수입되는 경주마가 경마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말관리인과 함께 수시로 접촉,말과 대화를 나누고 낯을 익히는 「순치작업」을 하는 한편 말발굽의 형태와 깎인 각도,말의 영향상태까지를 면밀히 점검한뒤 가장 알맞은 모양의 편자를 구상한다.

처음엔 건드리기만 해도 난리를 피우던 말도 점차 감정이 통하면서 순순히 발바닥을 내보이게 마련이다.

본격적인 작업에는 3∼4명이 나서야 한다.

한사람은 불규칙하게 자란 말의 발굽을 깨끗하게 평면으로 깎아내고 또다른 사람은 말이 놀라지않게 연신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대화하며 안심을 시킨다.

이 사이 한쪽에서는 섭씨 4천3백도까지 오르는 화덕에서 무쇠덩이를 달구어 망치로 두드리고 구멍을 뚫어 두께 1㎝ 정도,U자형의 편자를 만들어낸다. 마치 대장간을 연상시키는 작업이다.

편자를 찬물에 식혀 말의 발치수에 맞는 신발임이 확인되면 말발굽에 박는다.

대가리가 큰 2㎝ 가량의 못을 박을때는 말의 감정상태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부드러운 리듬감각까지 갖추어야 한다.

높이가 7∼10㎝ 정도인 말발굽은 사람의 손·발톱처럼 각질이어서 깎거나 못을 박아도 감각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각질을 벗어나 신경을 건드리면 발을 절게돼 경주마로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씨와 같은 숙달된 장제사라면 2시간 정도면 편자 4개를 모두 박을 수 있으나 예민한 말중에는 간혹 까닭없이 신발신기를 싫어하는 말이 있게 마련이어서 하루종일 실랑이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말의 발굽은 한달에 8㎜ 정도 자라나 자연상태에서는 적당히 마모되는데 경주마의 경우에는 워낙 발굽의 마모가 심해 편자같은 튼튼한 신발을 신겨주어야 한다.

구한말 수레를 끄는 말에 편자를 박아주던 아버지를 따라 17세부터 장제업에 손을 댄 이씨는 일제때 함흥·청진의 경마장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본격적인 경주마의 장제 기술을 익혔다.

해방후 국내 유일의 경주마 장제사이던 이씨는 6·25전쟁 직전 입대,대구기마헌병대의 장제를 도맡았고 54년 제대와 함께 문을 연 뚝섬경마장에 정착했다.

이씨는 지난 88년 3월 정년퇴직했지만 촉탁사원으로 장제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이씨가 배출한 장제사는 모두 21명. 아직 국내에 정식 장제사자격증 제도가 없어 이들 장제사들은 이씨의 오랜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한 일정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정식 장제사가 될 수 있다.

경주마들의 편자는 평균 한달에 한번씩은 갈아주어야 하므로 한번에 4개씩 연간 48개의 신발을 말 한마리가 소모한다. 과천경마장에 있는 경주마가 1천5백마리나 되기때문에 이들을 위해 이씨등이 만들어 신기는 편자는 연간 7만2천여개라는 엄청난 양이다.

현재 한국마사회에 소속된 장제사들의 한달평균 봉급은 1백여만원 수준. 경륜이 쌓일수록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종이고 지방경마장 신설예정으로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지만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교육시설이 없고 자격증제도도 없어 외국처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신분보장이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이다.

최근 장제사들은 지난 2천년동안 사용돼온 철제편자가 알루미늄편자로 바뀌는 「혁명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실용화된 알루미늄편자는 철제보다 가볍고 부드러워 평균 4백50㎏ 정도의 경주마가 부드러운 쿠션을 느낄 정도여서 기록단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루미늄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새로운 편자를 다룰 장제사들이 와전히 기술을 습득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므로 최근 장제사들은 새기술을 연마하느라 여념이 없다.

『정성들여 만든 편자를 신긴 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자신이 경주에 나선 말이 된듯 신선한 생명력을 느끼곤 한다』는 이씨는 『경마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후배들도 어엿한 전문직업인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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