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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골짜기에도 「사랑의 쌀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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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골짜기에도 「사랑의 쌀식당」

입력
1992.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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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으로 퇴락 대치리에 7개월째 운영/끼니 거르던 노인들 “오랜만의 인정 기쁨”지리산자락 산골마을의 돌보는 이 없는 소외노인들에게도 사랑의 쌀은 사람사는 맛과 정을 되살려주고 있다.

광주에서도 버스를 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2시간을 들어가는 전남 승주군 황전면 대치리 지리산 그늘아래 황전동부교회에 사랑의 쌀식당이 문을 연 것은 7개월전인 지난해 8월12일.

지난해 4월부터 이 교회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박연춘전도사(52)는 젊은이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버리고 노인들만 남아 세상으로부터 잊혀진채 쓸쓸이 살아가는 심각한 이농현상과 마주쳐야 했다.

사방이 산줄기로 가로막히긴 했지만 넓은 골짜기 안쪽에 평지가 있고 물길도 좋아 논농사 밭농사가 활발하던 마을은 80년대 초반부터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빠져나가기 시작,지금은 75호 가량만 남았고 그나마 대부분 노인과 아이들 뿐이다.

곳곳에 거미줄이 쳐지고 잡초밭이 된 폐농가가 늘어나고 버려진 농지가 다시 산비탈이 돼가는 퇴락속에서 노인들도 마을처럼 피폐해갔다.

농가수입이 떨어지기도 한데다 기력이 쇠하고 삶의 재미를 잃은 노인들은 밥상차리기도 귀찮아 우두커니 툇마루에 앉아 끼니를 거르거나 라면냄비에 억지 젓가락질을 하게 마련이었다.

박 전도사는 대치리 복판에 있는 30평짜리 교회를 노인주부대학으로 개방,대치 모전 등 인근 7개 마을 60세 이상 노인 40여명을 모아 이야기마당을 열었다.

서로 말벗을 삼으며 외로움을 추스리고 난 노인들에게 박 전도사는 편물거리를 구해오고 교회옆 공터에 토끼 닭을 기르도록 해 약간의 용돈마련길도 터주었으나 따뜻한 밥 한끼 차려내지 못하는 교회형편이 안타까웠다.

박 전도사가 이런 형편을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본부에 편지로 알리자 운동본부는 지난 8월12일 천리길을 마다않고 쌀을 보내며 지방에선 처음으로 사랑의 쌀식당으로 지정해 주었다.

쌀농사를 짓는 고장에도 사랑의 쌀이 필요한 기묘한 현실을 쌀나누기는 외면하지 않았다.

사랑의 쌀이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비록 1주일에 한번이지만 일요일마다 이빠진 소반위에 노인들을 위한 따뜻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몇몇 교회 부녀회원들이 푸성귀 반찬이라도 정성들여 준비했고 때로는 노인들의 입맛을 생각해 김밥 등 별식도 차려냈다.

박 전도사는 『자식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부부나 홀로 남은 노인들이 제대로 밥상을 받아보기 어려운 곳이 이곳만은 아닐 것』이라며 『사랑의 쌀 때문에 노인들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누군가로부터 보살핌받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고 말했다.

쌀식당을 매주 찾는 조봉훈씨(63)는 『식당이 문을 연 뒤로 노인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고 생기가 돌고 있다』며 『쌀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전동부교회는 오는 30일 마을주민 모두를 초청,사랑의 쌀로 점심을 대접하고 농촌노인문제와 이농문제 등에 대해 대토론회를 열 계획이다.<승주=김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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