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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민국/오인환(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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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민국/오인환(화요칼럼)

입력
1992.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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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밭이 냉담하다. 왜 그럴까? 정치가 유권자의 입맛이나 감대를 제대로 찾지 못한채 겉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수없다」는 그 유명한 자유당시절의 여·야구호 같은 화끈한 구호도 없고,국민의 관심을 끌어낼만한 선거이슈도,정책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인 것이다.그러나 선거전이 중반전으로 접어들면 서서히 뜨거워질게 분명하다. 문제는 그 열기가 총선 때문이 아니라 대권전초전 때문에 생기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하겠다.

다시말해 총선을 기화로 대통령선거를 위해 사전포석하는 정치지도자들의 과잉경쟁 때문에 지역싸움이 재연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TK의 대구·경북,YS의 부산·경남,DJ의 호남,JP의 충청권 등 네쪽이었으나 국민당 정주영대표가 강원도를 들먹이며 등장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오한민국」으로 쪼개지고 찢겨지는 아픔을 맛보게 되는건지 모를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의 지역감정 문제는 이미 고개를 내밀어 버렸다. 김대중 민주당대표가 지난 주말 민자당의 세 최고위원들이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민자당의 세 계파가 선고공고전에 연고지역을 누비며 표단속을 서두른 지역분담 속셈을 날카롭게 까뒤집어 놓은 것인데,그러면서 자신은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서겠다고 한 것도 따지고보면 「지역감정」을 겨냥한 고등심리전략의 하나라고 할수있는 것이다.

이 나라 지역감정의 연원이 고려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이 통설인 모양이지만 지금처럼 망국병이 되게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람은 박정희대통령이었다는게 일반론일 듯하다. 무리하게 장기독재정권을 유지하려다보니 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호남후보를 견제,고립화시키는 동서이간책을 썼으며,결국 그 영향 때문에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은 단기간내에 악화됐던 것이다. 잘못 줄기를 잡은 그같은 지역갈등은 그뒤 5공과 6공을 거치며 더욱 나빠지는 과정을 겪는다. 5공때는 동세력권인 영남이 다시 남북으로 갈려나갔고 6공에 와선 경북이 또다시 핵분열이라도 하듯 대구와 경북으로 나뉘어 TK성골론을 등장시키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역감정의 심화요인이 전적으로 역대 집권층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대중이란 걸출한 지도자가 그 시절 호남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양상이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3김씨가 자신의 연고지에서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6공 초기에 본 여소야대­황금분할이 가능했으며,한반도 남쪽이 네조각 날수 있었을까?

유신체제의 청산인이었기에 재기의 동기부여가 어려웠던 JP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도 두 김씨의 바람탓이었다. 『우리는 뭐냐』는 충청권의 반발이 공화당 대거당선이라는 역풍을 불러일으켰다고 볼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바람에 이렇듯 여·야지도자 모두가 음양으로 관계가 돼있었음을 부인하기가 힘들다.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바람은 불것이다. 현재의 정치구조와 상황으로 볼때 바람이 불지않을 도리가 없다. 김영삼대표가 여권의 후보자리를 차지한다는 가정아래서라면 두 김씨의 바람은 총선에서부터 불기 시작할 것이다. 87년 대선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먼젓번에는 광주에서부터 불기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부산에서 불기 시작할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일 것이다. YS를 견제하는 TK세력을 의식한 부산·경남의 친YS세가 선제붐을 형성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대통령선거와 총선에서 DJ를 일방적으로 지지한 것이 호남의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않았다는 인식이나,민주당이 그 지지를 역이용해 공천장사를 한다는 여론 등이 초반 DJ붐 고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같은 예측이 나오는 것이다.

두 김씨의 바람을 전제하고 본다면 JP는 다시 반사이익을 다소간 챙길 수 있을 것이고,정주영대표도 강원도에서 「강원도 출신」임을 과시할 수 있는 이변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남북통일을 말해야 하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남쪽의 통합부터가 아니라 남쪽의 사공오렬을 오히려 예상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불행한 일이며 비극적인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았으니 국민적 개선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책은 지방색의 화신처럼 돼있는 현 여·야 지도자들이 코페르니쿠스적 의식전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두들겨 맞춰 보아도 그 아이디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라는 답이 나온다. 차선의 개선방법은 지도자들을 지역의 볼모가 아닌 새세대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높다. 그러나 이상론으로는 가능하나 현실론에서는 역시 역부족이다. 이유는 우리사회가 차세대 지도자들을 키워 놓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의 지도자들에 대한 대안으로서는 역시 역부족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축소시키고 싶으면 먼저 신장시켜 주라. 약화시키고 싶으면 먼저 강화시켜 주라』고 말한 사람은 노자였다. 지역감정이 올해가 극이라고 한다면 내년부터는 축소되고 약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길게 보고 지역감정 해소의 씨를 심어 나가자. 이번 총선서 민자당의 이상하씨가 전남 담양·장성에서,민주당의 백승홍씨가 대구 서구갑에서,국민당의 김광일씨가 부산 중구에서 당선될 수 있어야 한다. 어렵기만 한 일이지만 그같이 지역갈등을 극복하는 의지를 실행으로 나타내기 시작할때 비로소 우리 아들딸의 시대에 「지역감정 극복」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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