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무·소신부재… 검사직 “싫다”/올 20등이내 지원자 2명 뿐/“균형있는 사법발전 저해” 우려 목소리89등과 1백70여등. 올해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지난 1·2일 판사와 검사로 각각 신규임용된 사법연수생 21기의 판·검사임용 합격선이다. 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사법연수원생들의 검사기피현상이 올해에는 더욱 심해져 판사와 검사의 합격선격차가 이처럼 벌어지게 됐다.
앞으로 사법연수생들의 판사선호경향이 더 짙어지면 균형있는 사법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법조계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7일 하오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21기 사법연수원 수료식을 통해 배출된 2백94명의 법조인중 성적우수자들 대부분이 판사직을 지원했다.
사법사상 첫 여성수석으로 대법원장상을 받은 여미숙씨(26)와 사법연수원장상을 받은 정상철씨(28)가 지난 1일 대법원인사에서 서울민사지법과 의정부지원 판사로 신규임용됐고,군에 입대할 예정인 법무부장관상 수상자 김도영씨(24),대한변협회장상 수상자 천대엽씨(28) 등도 제대후 판사를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연수원에 의하면 92년도 판·검사 신규임용대상은 올해 연수원을 졸업한 21기생 2백94명중 군대를 안가도 되는 1백73명과 군법무관에서 제대한 18기생 1백36명 등 모두 3백9명.
대법원은 이들중 사법연수원 21기수료자 34명과 군법무관 전역자 46명 등 80명을 판사로 신규임용했고,법무부는 사법연수원 21기 수료자 49명과 군법무관 전역자 33명,판사에서 전관한 2명,변호사 6명 등 모두 90명을 검사로 신규임용 발령했다.
지난 1월18일 판·검사 임용지원 접수결과 판사직에 87명,검사직에 1백15명이 지원해 외견상으로는 검사지망자가 훨씬 많았으나 임용결과 성적우수자들은 대거 판사직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연수원등 관계자에 의하면 21기생 가운데 시사성적과 연수원성적을 합친 판·검사임용순위 10등 이내에서는 검사지원자가 단 1명도 없었고,20등 이내에서도 11.13등을 차지한 2명이 검사직을 지원했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21기생의 판사임용 최저등수는 89등으로 상위권 뿐 아니라 중위권에서도 판사선호현상이 높아 이 등수의 언저리에 있는 연수생들간에 치열한 눈치작전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판사지원자중 최하위권의 연수생이 검사를 지원했다면 상위권성적에 해당될 정도였다.
사법연수원측은 검찰과의 미묘한 관계를 의식,검사임용 합격선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1백70등 전후에서 임용당락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선호경향은 군법무관을 마치고 21기와 함께 임용된 연수원 18기생도 비슷하다. 그러나 3년전 임용자들과의 형평을 고려,판사직은 1백20등 전후 검사직은 1백60등 전후에서 임용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판사직 선호현상이 3년전보다 훨씬 심화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판사로 임용된 21기의 한 연수생은 『판사직을 지원했다가 임용되지 못하면 변호사가 될 수 밖에 없기때문에 90등부근의 동기생중 상당수가 눈치작전끝에 검사직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올해 검사임용자의 성적이 특히 저조한데에는 종전 70명선이던 검사 신규임용인원을 90명선으로 대폭 늘린 것도 원인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에 의하면 89∼91년에는 올해보다 20여명 적은 69∼71명을 신규임용했었다.
법무부와 검찰은 사법연수생의 판사선호경향에 대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의 일반적인 풍조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검사는 직무성격상 밤샘수사를 하는 경우가 잦고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없는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이후 계속 심화되고 있는 판사선호현상은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80년대 들어 검찰이 최고수사기관으로서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채 「권력의 시녀」처럼 돼버려 『상명하복 기관인 검찰에서는 소신있게 일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3월 임용된 서울지법 정모판사(29·사법연수원 17기)는 『검사시보과정에서 검찰권이 소신있게 행사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검찰의 주활동영역인 형사분야는 전체 법률의 일부에 불과할 뿐 폭넓게 법률지식을 익히 힘들어 변호사개업후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의 한 교수는 『80년대 후반부터 우리사회에서 가속된 권위주의의 퇴조현상도 권력기관인 검찰에 대한 매력을 감소시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현재와 같은 판사선호경향을 일시적 현상으로 간주,수수방관한다면 판·검사 임용자간의 성적차가 갈수록 벌어져 부작용이 심화될 개연성이 높다. 이때문에 재야법조계 등에서는 검사지원을 유도할 수 있도록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검찰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한편 검찰권의 독립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고재학기자>고재학기자>
◎“능동적인 검찰업무가 좋아”/판사서 검사로 전직사례도
우수한 성적으로 판사에 임용됐던 사법연수원 20기생 2명은 최근의 검사기피현상과 달리 1년만에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지난 2일 법무부 검찰인사에서는 이용 검사(32)와 은진수 검사(31)가 서울지검 형사부에 신규임용됐다.
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사법연수원 수료후 지난해 3월부터 서울 민사지법 판사로 근무했던 이검사는 능동적인 검찰업무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고민끝에 검사직을 희망하게 됐다고 한다.
이검사는 『사건기록과 법전만 뒤적이다 피의자와 부딪치며 일하니 활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검사는 최근의 검사직 기피현상에 대해 『판사는 독립성이 보장되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반면 검사는 술과 야근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인식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하고 『각자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상고·서울대 경영대출신의 은검사도 공인회계사 자격시험과 사법고시에 이어 행정고시 재경직까지 합격한 수재. 지난해 3월 부산지법 민사8부 판사로 임용됐던 은검사는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검사직이 맞을 것 같고,최근 증가하는 경제범죄를 본격적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욕심때문에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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