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정치는 종교적이어야 하고 최상의 종교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종교는 희생과 봉사,정치는 참여와 책임이기에 더욱 그렇다.『모든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과 기와집에 살기 위해 노력하자』는 연두교서를 북한 김일성이 발표했다고 신문은 전한다. 지상낙원의 사회주의 건설 반세기 동안 아직도 쌀밥과 고깃국과 의류와 주택이 턱없이 부족하다니 어인일인가.
권력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물음은 권력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 것인가를 반문한다. 진정한 정치가는 결코 권력의 왕좌에서 죽지 않는다는데 북한 김일성은 임기도 은퇴도 없는 모양이다. 북한에도 정치가 존재하고 언론이 존재하고 자유가 있다는 말인가.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은 법마저도 그것은 내 법이 아니라 우주공간의 자연법칙의 일부요,누구의 소유도 아니라고 하였다.
북녘의 사람들은 본디 진취적 기상과 자주적 독립심이 강한 전통이 있다. 그런데도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지 반세기,쌀과 고깃국과 옷이 부족하다면 「권력의 잘못된 운영」이 분명하다. 북한은 이제 더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다. 잃어버린 내조국의 반쪽,이제 우리는 그곳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곳 권력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비판받아야 하고 점검당해야 하고 그리고 책임지워져야 한다.
우리정부도 더이상 북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차단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사실을 우리국민은 좀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남의 어느 곳에도 이제 핵무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실을 심각하게 여기는 태도는 없었다. 문맥으로 봐서 어제까지 있었다는 뜻은 분명했다. 언제 어디에 얼마가 있었다는 내용도 당연히 포함했어야 했다. 그러나 거두절미 그렇게 선언하기만 했다.
알 권리,들을 권리,말할 권리를 경제발전과 안보논리에 의해 유보당했던 지난 30년간의 날들을 다시 생각한다. 참고 견디며 치른 우리 모두의 희생이 참담하게 무산되는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우주공간에는 수 없는 생명의 비밀이 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원자핵의 융합도 핵과 핵의 힘의 결합이다. 핵은 생명의 원천이고 성장의 근원이다. 핵은 사실이다. 생명의 탄생은 사실과 사실의 결합이다. 거기 신비와 거짓은 없다. 우리가 신비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실관찰의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 쓰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정치가가 필연적으로 소유해야 할 권력은 봉사의 책임과 지성의 치열한 자기도야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성취의 도구로 전락해버릴 위험을 항상 지니고 있다.
사치와 향락을 경계해야 하지만,권력의 독점과 자유의 억압에서 탄생하는 가난은 죄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중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거듭 무시당할때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은 소련사회를 붕괴시켰던 가장 근본적인 역사정신이었다. 대중을 억압하거나 속이며 연명해 가는 통치의 기술은 추한 것이다. 그 권력은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뉘우치고 참회하며 오만하지 않는 겸허의 자세가 따를 때 대중은 그 정치를 신뢰하고 권력을 감싸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대통령이 더 솔직하고 겸허한 고뇌의 정치가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저 북녘의 권력자들도 권력의 야욕에서 겸허해지기를 바란다. 북한은 더이상 남의 나라가 아니다. 갈 수 없는 조국의 반쪽,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이 글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그러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잊지 말자.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죄악에 대한 심판은 준엄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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