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개성까지 기차를 타고 오면서 북한기자들과 박정희 대통령 얘기를 하게 되었다. 60년대만 해도 북한에 뒤졌던 한국경제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설명하다가 박대통령 얘기가 나오자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당신은 박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한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는가』
『박대통령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착잡하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고 18년동안 독재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심복의 권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독재아래 국민들은 꼼짝 못했지만,그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대부분의 국민이 인정하고 있다. 특히 통일문제가 다가오면서 우리가 60년·70년대에 경제적 기반을 이룩하지 못했으면 큰일날뻔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북한에 오는 남한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박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고,가난의 한을 풀기 위해 경제건설에 주력했다. 그는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노래를 작사·작곡까지 했다. 그는 친일파였고 한때 공산주의자였으며 그의 형도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집권한후 철저한 반공노선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독재로 인기를 잃었으나,가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기자는 더이상 묻지 않았고,나는 『북한에 온 남한사람들로부터 박대통령 얘기를 많이 들었다』는 북한기자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는 나에게 들은 똑같은 대답을 다른 남한사람들에게서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재는 했으나 경제를 건설했다』는 평가를 북한의 현실에 대입시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북한이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내놓고 두려워하게 된 오늘 우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스러워하는 것은 지난날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의 경제력이라도 갖췄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박대통령시대의 공과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가난한 소년으로,국민학교 교사로,일본군 장교로,공산주의자로,쿠데타주역으로,반공독재자로,우리의 현대사에 파란만장하게 부딪쳤던 복잡한 인물… 많은 남한 사람들이 평양에 가서 그를 다시 생각했다는 것,북한 사람들도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남북교류현상」의 하나이다.<편집국 국차장>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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