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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찍을 것인가/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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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찍을 것인가/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2.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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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 아마 상당수의 투표자에게는 지금 이처럼 난감한 질문을 없을 것이다. 여기에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난감함은 한층 더할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란 어차피 선택의 게임. 아무리 마음에 안드는 후보뿐이라 하더라도 오는 24일 우리는 이중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고 결과가 싫든 좋든 그들은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의 정치를 좌우할 14대국회를 구성하고 있게된다. 그것이 선거인 것이다.○“투표하겠다” 85%

약 1주일전 실시된 한 여론조사(중앙일보 2월27일)는 우리 유권자의 76.5%가 아직 찍을만한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으며 후보선택의 기준으로는 61.8%가 후보개인의 자질과 과거경력을 들었다. 소속 정당을 선택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은 불과 13.8%. 그러나 13대선거(76%)보다 훨씬 높은 84.9%가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앞으로 20일의 의미가 이번 총선결과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국민과 국회와의 관계가 이렇게 정당을 매개로 하지못함은 대의제도를 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겐 우선 불행한 일이고 유권자에게는 매우 불편하다. 마음에 드는 정당하나만 고르면 될일을 정보도 충분치 않는데 인물고르기를 하자니 품도 들고 힘도 든다.

거기다가 선거판에 나온 후보들이란 하나같이 입담들이 좋아 어수룩한 유권자란 판판이 속게 마련… 그 결과를 우리는 「정당들은 이합집산하느라 영일이없었고 여기에 적지않은 저질,자격미달들이 판을 친」 13대 국회에서 역력히 보았다. 오죽하면 78.7%의 국민이 13대 국회가 「잘못하고 있다」(한국갤럽조사)고 응답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13대 국회는 우리의 정치불신을 바닥까지 끌어내린 기록보유자로 남게될 것이다.

우리는 선거때마다 「인물중심」이란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정치권에 대한 불신,환멸의 표시는 되었을지 몰라도 실제 그런 동기로 투표권을 행사해왔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어느 정치학자는 지금까지의 우리 선거가 정당위주의 선거도,인물위주의 선거도 아닌 금권·관권·지역주의에 지배된 선거였다고 잘라 말라하기도 한다.

이것은 투표결과가 실정치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오랜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있을 법한 일이다. 이런 증세에 익숙해져 표는 표대로 팔고 정치는 정치대로 불평하는 2중구조적 태도에 익숙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증세가 새정치를 한다는 지금까지 타성처럼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며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봐서 어느쪽도 「금권·관권·지역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결의를 보여주지 않는데 있다.

갖은 불법,공약,선심,외압,매표,단속 등 반복되는 타락의 분위기를 보면서 원망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정당들이다. 아무리 이합집산의 계속이었다해도 지금껏 우리 국민에게 선택의 준거를 제시해주지 못했다는 것은 정당운영의 대실패나 다름없다.

합당의 당위는 차치하고라도 결과적으로 이룩한 다수라는 강점을 다수국민의 여망인 「안정속의 개혁」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은 집권 민자당의 위치를 한때 지지도 10%대로 전락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아야할 것이다. 개혁은 커녕 「다수」를 독점과 전횡의 여건으로 착각,6공후반의 마디마디에서 과거로의 퇴행 또는 회귀의 인상을 국민으로 하여금 강하게 느끼게 했던것은 합당의 이점을 스스로 깨버린 가장 큰 실책이었다.

민주냐 독재냐 하는 2분법적 상황이 사라진후 커다란 좌표상의 혼란을 보인것이 우리의 야당. 새로운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이슈,새로운 이미지를 정립해보려는 노력조차 포기한듯 안이하게 구태에 의존하기 일쑤였고 수권을 부르짖으면서도 끝내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영호남의 합작이라는 이상적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플러스의 효과로 나타날지 마이너스로 나타날지 아직 점칠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신생 정당 가운데 리더라는 국민당도 마찬가지. 『기업을 제대로 하려면 정치인이 돼야한다』는 창당 회견내용부터가 문어발을 연상케는 했지만 보다 그후에 보인 오해와 미숙과 착각이 뒤범벅이 된듯한 행태와 수법으로 초기에 모았던 시선을 거의 잃은 상태. 당명과 「지원」이 아쉬운 각종의 후보지망자들의 메카가 되고있을 뿐이라는 인상이다.

○정당위주가 바람직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우리의 정당들은 아직 20%선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민자 24.5%,민주 24.5%·91년 11월 한국갤럽조사). 「지지할 정당이 없다」가 33.6%나 된다. 하지만 후보선정에 정당이 바탕이 돼야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민주주의를 제도로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그 길이 옳다. 이제 웬만한 재야세력까지 정당화했으니 설사 운영과 행태에 비민주적이고 미분화된 구석이 있다하더라도,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불합격의 실적들 뿐이라 하더라도 정치발전에 열정이 있다면 한번 정당을 택해 투표해볼 일이다.

그것은 어차피 정치란 정당세의 역관계로 모양이 그려지는 것이라는 결과론적인데서도 뜻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의 탈만 쓰면 누구도 좋다는 인물포기의 것도 되어서는 안된다.

선거의 달에 들어서면서 선거혁명이니 유권자혁명이니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는 직언들이 많아진 것은 다행스럽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정치 냉소주의에 대한 따끔한 한마디는 눈여겨진다.

정치를 마치 저급의 오락물을 평하듯 내려다 보면서 자신의 일상과는 무관하다는 모순된 태도,그래서 자기지역 후보조차 모르는 초연한듯한 태도는 「저급한 관심」보다도 더 정치발전에 해악적 요소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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