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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김단체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결성/상임의장 박갑동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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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김단체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결성/상임의장 박갑동씨 인터뷰

입력
1992.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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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독재 타도에 여생 바칠 것”/비폭력 원칙… 중·소서도 큰호응/북정권 붕괴대비 임정구성 계획지난1월 모스크바에서 결성된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상임의장 박갑동씨(73·전남로당지하당총책)는 70객으로 믿어지지 않을만큼 젊어보였다. 동경 한국 YMCA회관근처에서 성갑서방이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씨는 한국일보와의 회견에서 여생을 김일성 독재정권타도에 바칠 각오임을 밝히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창건에 참여한 우리가 민족의 염원을 배반한 독재정권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으려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구국전선을 결성한 동기와 경위는.

『개인적으로 늘 반김일성 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해오던 터에 더 늦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지난 90년 강동정치학원장 출신인 박병율씨를 일본에 초청했다. 구소련에는 북한의 망명정치인이 많으니 힘을 합쳐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아직 소련이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어 반북한단체결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집회·결사의 자유도 완전하지 않은 실정이라면서 때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는 반김일성 단체보다는 우선 50년대 숙청당한 소련파 40여명의 소식과 묘소의 확인을 요구하는 원호단체가 필요하다면서 재소유가족들을 규합해 지난해 유엔인권위원회에 탄원서도 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고 한다.

그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실패이후 공산당이 와해되자 소련파들로부터 한번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유일한 국내파 망명객인 내가 끼지 않고는 일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요청에 따라 지난 1월25일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28·29일 이틀동안의 회합에서 구국전선이 정식 결성됐다』

­기구 조직은 어떻게 돼 있나.

『국내파의 대표인 나와 소련파원로 이상조씨,중국파인 서휘씨(전 노동당 평양시당위원장) 세사람이 공동의장이고 내가 상임의장이다. 중앙상임위원을 14명 두었는데 대부분 인민군과 노동당 및 정부 기관의 고위간부출신이다. 사무국은 모스크바에 두기로 하고 사무국장은 전 문화선전성 부상이었던 정상진씨가 맡았다. 상임의장인 내가 일본상주자이므로 일본에 사무국조직을 두기위해 전조선대(동경)교수 허동찬씨를 차장에 임명했다』

­세력전망을 어떻게 보나.

『동참자가 많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창립선언 이후 소련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참여의사를 밝혀왔고 중국쪽에서도 희망을 표해온 사람이 많다. 일본에는 물론 한국과 북한내에도 반김세력은 무수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과거 경력에 관계없이 수용할 생각이다』

­활동계획은.

『비폭력적인 정권타도운동이므로 우선은 선전활동에 주력할 생각이다. 5월쯤 한글과 러시아어로 된 신문을 발행해 국내외에 배포할 것이다. 북한의 지도급인사들에게도 우송하기 위해 주소록을 만들어 두었다. 물론 당사자들에게 배달되지 않겠지만 검열원들이라도 읽어보고 해외동포들의 움직임과 김정권의 독재·부패실상을 알게될 것 아닌가. 그것만도 큰 수확이다. 자금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일본어 중국어 영어판도 발행할 것이다.

일본 등지에서 수시로 강연회를 열어 북한의 실상과 김정권타도의 당위성을 홍보할 생각도 갖고 있다. 반김체제운동확산에 도움이 될 일이면 무엇이건 할 생각이다』

­활동의 궁극목표는.

『물론 김정권타도이다. 독재정권이 있는 한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하므로 우선 북한을 개방·민주화 해야 한다. 한국은 김정권을 안정된 정권이라고 보고 평화공존을 외치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곧 붕괴될 정권이다. 그때에 대비하기 위해 차차 임시정부도 구성할 것이다. 북한에 민주정권이 실현되어야 남북간에 제도와 가치상의 근사성이 생길 것이고,그것을 통일의 기초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정권타도 운동방식은.

『궁극적인 목표가 정권타도이지만 선언문에 타도라는 표현을 삼가고 정권청산이란 표현을 쓴 것은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대하는 비폭력원칙에서였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정권의 말로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하야를 거부한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

­활동에 상당한 자금이 소요될텐데 조달방법은.

『자금문제가 제일 걱정이다. 우선은 회비체제로 충당해가면서 재력있는 사람을 영입해 고문으로 추대하는 방법도 검토중이다』

­발기인중 여성 4명이 끼여있는데 누구 누구인가.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이름을 넣지 않았다. 소련은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고 장래도 불확실하다. 북한요원들의 테러위험성도 있다. 여성 4명은 모두 소련거주 망명자들인데 대학교수로 있는 사람도 있다』

­상임의장의 경력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나는 국내파 거물급으로 유일한 사람이다. 경남 산청의 부르주아 출신으로 중앙고보와 와세다(조도전)대학을 나와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사회주의활동을 택했다. 북한에 인민공화국이 창설됐을때 최고회의 대의원직을 거부하고 남로당활동을 시작,이주하가 체포된뒤 지하당총책이 됐다.

한국동란이 일어난 50년 9월 맥아더 사령관의 상륙작전에 쫓겨 입북,51년 3월에 평양에 도착해 문화선전성 유럽부장이 됐으나 53년 남로당파 숙청때 체포당했다. 박헌영이 처형당한 후 56년 3월에 나도 총살당할 운명이었는데,그해 2월20일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연설의 여파로 소련측 입김에 힘입어 죽음을 면했다. 이 바람을 타고 정치범들이 석방됐는데 황해도 은율에서 정양생활을 하다가 제3국으로 탈출,57년에 일본에 밀항했다』

­한국국적을 갖게 된 계기는.

『한동안은 남북 양쪽으로부터 감시받는 입장이었으나 일본 정계의 친구들이 도와주어 69년 단수여권을 얻어 고향에 살아계시던 92세의 노모를 찾아 볼 수 있었다. 70년대초 어머니 소상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한국적을 취득,출입이 자유로워졌다. 다음달 23일에도 서울에 갈일이 있다』

­이데올로기로는 지금도 사회주의 신봉자인가.

『한평생을 사회주의,진정한 공산주의를 찾아 헤맸지만 사회주의는 허망하게 무너져버리지 않았는가.(웃음) 나는 가족까지 북한에 남겨두고 온 사람인데 이산가족 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모두 죽었을 것이다. 후회는 않는다. 후회해 본들 소용없는 일 아닌가』<동경=문창재특파원>

□구국전선발기인명단

◇중앙상임위원

▲독립국가연합(구소련)=이상조(의장 전주소대사) 강상호(전내무성부상) 정상진(전문화선전성부상) 박병율(전강동정치학원장) 유성철(전인민군최고사령부 총참모부부참모장·중장) 장학봉(전인민군항공사령부군사위원·대좌) 남봉식(전방송위원회위원장) 심수철(전민족보위성간부국부국장·대좌) 송원식(전평양특별시당부위원장) 유성걸(전항공군관학교교장·소장) 리황룡(전민족보위성 병기총국장·소장) 김동수(전평양특별시내무부장·소장)

▲일본=박갑동(전남로당지하총책)

◇중앙위원

▲중국=서휘(전조선노동당평양특별시당위원장·조선직업총동맹중앙위원장) 김강(전문화선전성부상) 홍순관(전김일성 비서실장) 노민(전민청부위원장·평양시 당부위원장)

▲일본=허동찬(전동경조선대교수)

▲미주=주영복(전인민군중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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