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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사찰 숨바꼭질/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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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사찰 숨바꼭질/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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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쫓아가서 잡아야겠다는 단호한 자세이다. 북한은 슬금슬금 뒤를 살피면서 한사코 도망가려 하고 있다. 미국이 윽박지르고 소리를 크게 칠때에는 멈칫 서는 척 하다가도 조용해지면 다시 줄행랑을 친다.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오랫동안 벌여온 숨바꼭질 게임이다.

이 숨바꼭질 놀음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한마디로 좀 어정쩡하고 어색한 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귀엣말에 따라 북한을 쫓으라면 쫓고 소리치라면 쳐보는 그런 역할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하긴 북한의 핵문제에 관한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독자적인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알지를 못한다. 전적으로 미국의 정보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미국의 귓속말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귓속말에 따라 자주 왔다 갔다 하다보니 우리의 대북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위험경고가 나온지 벌써 1년반이 넘었고 그동안 이 문제를 두고 국제여론의 압력이 강력하게 대두된지도 오래이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라도 알만한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위협을 받을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당사자인 남한으로선 더구나 그 심각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의 정보판단에 따라 그때 그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긴 안목에서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진해온 남북관계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어서 대응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혼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핵문제에 접근해온 자세와 대북정책의 흐름 사이에는 차이가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

작년 11월 서울의 남북고위급 회담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남북대화에 지장을 받을까봐 핵문제를 별개로 다루는데 양해해 주었다. 이 틈바구니를 이용해 북한은 상당히 멀리까지 달아날수 있었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합의서는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고위급회담이라는 유일한 대화창구가 닫힐까봐 겁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꿍꿍이속 때문이었을까.

지난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6차 총리회담 역시 합의서와 비핵선언의 비준서 교환이라는 축제무드에 묻혀 핵문제는 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정원식총리가 강력하게 사찰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김일성주석의 반박에 눌리고 만셈이 되어버렸다. 핵무기개발을 전면 부인하는 김 주석에게 이렇다할 반론한마디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이 백악관의 보좌관을 보내 6월 사찰 시한과 「핵해결없이는 경협도 없다」는 강경방침을 통고하자 뒤늦게 강경급선회를 시도하느라 야단들이다. 정 총리는 이제와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남북경협은 불가능하다」면서 경협의 전제조건으로 이산가족문제를 덤으로 하나 더 추가하고 있다.

김우중,문선명,정주영씨 등의 북한방문 상담에 들뜨고 지금 북한대표까지 참석한 가운데 서울서 열리고 있는 두만강개발 국제회의에 시선이 가있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의 속셈을 잘못 파악한 탓인지,한·미간의 협의가 덜 긴밀했기 때문인지,우리가 북한 핵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탓인지,이유가 어디에 있든 우리의 대북정책은 든든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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