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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과 언론/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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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과 언론/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입력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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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권권장론」의 의미「우리 모두 이번 선거에서 기권해 버립시다.…누구를 찍어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할 이번 선거에서 차라리 기권해 버립시다」 지난 2월20일자 한국일보 석간 시사칼럼에 실린 서강대 신윤환교수의 주장이다.

정치학자가 유권자를 향해 공공연히 기권을 권장하고 나서야만 하는 슬픈현상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권도 정당한 참여행위이고 당당한 의사표현방법」이라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물론 찬·반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치지도자와 정당이 유권자에게 역설적으로나마 기권을 권장해야만 하는 우리 정치판의 무원칙 무정견 무비전 부패타락 비민주성 비생산성 등을 부인할 수 있을까? 보통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의 기회 뿐」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자가 과연 있는가!

「기권권장론」이 나타나고 그러한 주장의 배경에 대한 반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의 정치현상적 의미는 자못 심각하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겐 여당이건 야당이건,구당이건 신당이건 모두가 다 「추방(Proscription)의 대상」일뿐,미래에 대한 「처방(Prescription)의 기대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보다 더 큰 정치부재와 정치불신이 있을 수 있을까.

현대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유토피아」가 다 그러하듯이 선거에의 전면 불참론 역시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개혁의지의 표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상론적 「유토피아」만으로 현실이 움직이질 않으니 「기권권장론」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또 다시 현실정치의 개혁을 위한 구체적 이행전략을 모색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정치인으론 정치개혁 안돼

정치적 부조리와 타락에 대한 빗발치는 비난과 개혁론에 대해 이제까지 우리 정치권이 보여온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가지 유형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노선이다. 「선거에 돈을 뿌리지 말라」는 따위의 주장은 「정치를 모르는 백면서생들의 헛소리」이고 현실정치에는 보통사람들의 상식과는 다른 「정계 특유의 상식」과 전략이 있어야 하므로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눈가리고 아웅식」 또는 「당리당략적」 개혁 노선이다. 애당초 자발성이 없으니 「눈가리고 아웅식」이 될수 밖에 없다. 모처럼 기회가 있어도 시종 당리 당략적 차원에서 흥정의 대상이 되다보니 앞뒤가 안맞고 겨우 합의된 알량한 법이나마 무시되고 만다.

셋째는 「건망증 기대 노선」이다. 언론이나 식자층의 「비판도 한때」일뿐,시간이 지나면 여론도 가라앉고 선거가 끝나면 그것으로 일단 「국민의 심판」도 끝나는 것이니 비판을 못들은체 참고 견디고 무슨수를 써서라도 선거에만 이기면 된다는 식의 반응이다.

넷째는 「속죄양 활용 노선」이다. 정치적 사건이 발생할때마다 본질적 개혁대신 몇몇 「속죄양」을 만들어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린뒤 「사이비 개혁의지」를 천명하고 나서는 방법이다.

반세기 동안이나 이런 과정을 되풀이해온 결과 이제 분명해진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정치인과 정당에 정치개혁을 맡겨놓아서는 절대로 정치개혁이 이룩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개혁에는 정당간의 타협이나 법적규범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정치권 이외의 국민적 「캠페인」 없이는 정치개혁이 발동조차 될 수 없다.

○언론의 캠페인으로

그동안 학계나 언론계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주장과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 결과는 응분의 성과를 쟁취했다기 보다는 게절풍적 「매너리즘」에 빠져 그때그때 울분과 불만을 털어놓는 「지적 자위행위」로 끝났지 않았던가.

지금부터라도 현실정치에 영향력이 있는 언론이 만족할만한 정치개혁이 달성되고 체질화될 때까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치개혁 캠페인을 주도해야 한다.

어느 선진국에서 재벌총수와 대통령이 연간 수백억에 달하는 흑막의 돈을 주고 받은 것이 알려지고도 편안히 잔여임기를 채우고 또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도록 방치한 「제4의 권부」가 있는가도 자성해 보아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특히 언론 스스로가 정치인들의 「우리식대로」와 「건망증 기대」에 길들여져서 「정계의 상식」을 「보통사람의 상식」과 「언론의 상식」으로 전화시켜버린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기존의 정치풍토,그것도 청와대와 여의도의 「상식」에 매몰되어 있어서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정치개혁은 그나마 영향력이 있고 국민의 기대가 걸린 「제4의 권부」 즉,언론의 개혁과 캠페인의 주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리고 4년안에 성공하여야만 1996년 다음 총선서 이제까지와 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비판론이나 「지적자위행위」를 극복할 수 있고 무정부주의적 「기권권장론」의 정당성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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