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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시계(정경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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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시계(정경희칼럼)

입력
1992.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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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망해버린 명나라를 「대의 명분」의 이름 아래 신주 모시듯했다.「북벌정책」은 볼모로 잡혀갔다 와 등극했던 효종임금이 만주 오랑캐 청나라를 치자는 것이었다.

효종임금은 이완을 훈련대장으로 등용해서 군대를 양성하고,제주도에 표류해온 네덜란드인 하멜을 시켜 새로운 무기를 만들게 했다. 또 전국의 성지를 개수케 했다. 그러나 효종임금이 재위 10년만에 눈을 감자 북벌정책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라 업신여기고,망해버린 명나라를 계속 어버이나라로 쳤다. 명나라의 만력·숭정 두 황제의 제사를 지냈으니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시대착오는 지금도 목격할 수 있다.

지난 4일 북한의 방송들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다짐하는 김정일의 담화를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동유럽공산권의 붕괴는 『주체를 확립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해석이었다.

이미 공산주의의 본바닥 유럽에서는 사라져버린 공산주의의 깃발을 신주단지처럼 붙들고 있는 북한은 망해버린 명나라를 신주단지처럼 붙들었던 왕조시대 허깨비 같은 대의 명분론을 오늘에 재현하고 있는 꼴이다.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의 시계도 완전히 서버린 것 같다. 그는 지난 20일 정원식 총리일행과의 오찬에서 또다시 「흰쌀밥에 고깃국과 기와집·비단옷」을 말했다. 반세기 가깝도록 백성위에 「구세주」로 군림하고도 「흰쌀밥」을 이룩하지 못한 사실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과거는 묻지 말자』는 김일성의 말에서도 우리는 그 「과거」에서 멎어버린 그의 시계바늘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천도교 예수교 기독교 유교 마르크스주의에 상관없이 과거는 백지화하고 단결해야』한다고 했다.

김일성으로서는 그 무엇보다도 무고한 동포를 적어도 백만명이나 죽게한 끔찍스런 전쟁의 업보를 악몽처럼 안고있을 것이다. 또 「주체」의 이름으로 바꿔치기했던 국제공산주의의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을 것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도 말했다. 『…제 정신을 잃고 러시아로 조국을 삼고 레닌을 국부로 삼아서…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게 되니 한심한 일이다』

이 모든 과거를 없던 일로 치고,피묻은 손을 감출수만 있다면 김일성은 두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남북정상회담 주장이 왜 철부지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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