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높은 영어벽… 수업시간이 두렵다(조기유학 이대로 좋은가:7)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높은 영어벽… 수업시간이 두렵다(조기유학 이대로 좋은가:7)

입력
1992.02.24 00:00
0 0

◎발음 서툴러 웃음거리되기 일쑤/학습진도 못따라가 퇴학사례도/조기습득해도 정서차이로 졸업까진 험로고교 1학년이 되자마자 미국에 온 A군(17)은 미국생활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엔 이모가 살고있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공립학교에 다녔으나 불과 6개월만에 사립학교로 옮겨가게 됐다. 영어 때문이었다.

전교생 2천5백여명중 외국인은 단 3명,한국학생은 A군 혼자였다. 외모만으로도 미국학생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A군의 특이한 영어발음은 희한한 웃음거리였다.

입만 열면 학급 전체학생이 깔깔거리고 웃었고 걸핏하면 영어를 해보라도 하면서 놀려댔다. 그래서 A군은 몇달동안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부가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결국 기숙사학교로 전학한 A군은 같은 방 친구를 사귀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부의 필라델피아로 옮겨온 A군은 생활영어는 어느정도 하지만 수업영어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형편이다.

A군은 『미국아이들이 30분 걸리는 공부를 6시간 걸려야 할 수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하루평균 1백쪽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하는데 겨우 5쪽밖에 못 읽는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미국에 떨어뜨려 놓기만 하면 영어는 된다』 『그래도 몇년 있으면 영어 하나는 제대로 배워오겠지』하고 생각한담.

과연 그럴까. 개인차가 나긴 하겠지만 이곳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교포들은 매우 회의적이다.

20여년전 두살난 딸을 데리고 이민온 K모씨는 영문과 출신이면서도 영어때문에 당했던 숱한 낭패를 경험삼아 아이에게 집에서도 무조건 영어만 쓰도록 했다. 이곳에서 낳은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했다.

자매는 무난히 명문대학에 진학했으나 문제는 대학에서 일어났다. 영문학 전공인 큰딸은 『영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하소연했다. 아무리 영어만하며 자라났지만 부모들이 집에서 쓰는 한국말,한국음식 등 생활습관에 따른 한국인의 정서가 영어를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딸은 영어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한글과 영어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했다.

K씨는 『한국에서도 공부가 신통치 않았던 학생들이 어릴때 온다고 해서 영어를 극복하고 무난히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K씨 외에도 많은 교포들이 『영어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많은 한국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영어는 못해도 수학은 잘 해낸다』고 안도한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사실이다.

한국유학생들은 숫자만 나오는 계산문제는 미국 아이들보다 훨씬 잘 푼다. 그러나 영어로 개념을 설명하는 집합 등 응용문제에서는 처진다. 한글로도 개념파악이 잘 안되는 상태에서 영어의 논리적인 설명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학·물리 등의 과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뉴욕 인근의 K고교에 다니는 C모군(18)은 평균성적이 B+인 모범학생. 최근 치른 학교평가시험에서 수학의 경우 8백점 만점에 6백90점을 받았다. C군은 『만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영어해석을 못해 풀지 못한 문제가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이런 C군도 영어는 2백점. 미국에 온지 2년밖에 되지 않는 그로서는 미국의 국민학교 3학년 과정에 나오는 단어부터 알수가 없었다.

중1,고1된 두 아들을 데리고 90년에 미국에 온 상사주재원 P모씨는 『매일 옆에 붙어앉아 새벽까지 도와주어도 아이들이 따라가느라 허덕거리고 있다』며 『혼자 온 유학생들의 고생이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가끔씩 아이들을 만나러 미국에 오는 부모들은 햄버거도 주문하고 쇼핑도 안내하는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마냥 흐뭇해 한다.

미국 고교과정의 영어는 희곡 등 수준높은 문학작품을 가르친다. 이와달리 한국 유학생들이 오자마자 많이 수강하는 영어연수프로그램(ESL)은 국민학교 수준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영어프로그램에서 받은 A+점수가 정규영어과목에서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대견스러워하기 일쑤이다.

앞서 A군처럼 영어때문에 미국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면서도 훌륭히 이겨나가는 학생들은 물론 많다. 그러나 일부는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한다.

지난해 유학센터를 거쳐 동부의 어느 고교에 함께 온 국교생 6명은 6개월만에 1명을 남기고 모두 쫓겨났다. 학교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도 했지만 『영어를 이렇게 못해서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학교측이 내세운 퇴학이유였다.

교포 D모씨는 『주위의 한국 유학생을 보면 대부분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이들이 영어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느라 겪는 고통과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를 부모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뉴욕 la="손태규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