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연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입니까』독자들의 자괴섞인 전화를 받을 때면 선뜻 응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6공이 5공에 비해 민주화의 외양에서 앞섰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분명 그 시절에 비해 언로가 트였고 사회 여러곳에서 권위적인 색채가 퇴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독자전화가 아니더라도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과거 암울했던 기억들의 편린을 잠깨우기에 충분하다.
국민적 인기를 얻고있던 한 코미디언이 눈엣 가시같은 신생 야당으로 출마하려고 했다해서 「외압」을 받고 나라 밖으로 쫓겨갔다면 민주화란 말은 이미 무색해지고 만다.
우리가 유신시설 또는 5공의 강권통치 밑에서 경험했던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일들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보궐선거후보를 도중에 사퇴하고 쫓겨가다시피 외국으로 떠났다 돌아온 한 인사가 또다시 받고있는 「대우」도 그렇다.
1년10개월만에 귀국한 그를 미행 감시할 정도인데도 정부·여당은 태연자약했다.
웃지못할 코미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당공천에서 탈락한 유력인사가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라치면 여러곳서 유형 무형의 압력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지역기반이 탄탄하더라도 기업을 가졌거나 과거약점이 잡힌 인사라면 「작심」을 하지않고는 출마를 결행하기 어려움은 자명한 일이다.
각 후보자들의 과잉선거운동도 이같은 총체적 탈법에 일조를 한다. 여권의 한 실력자는 최근 창당대회후 참석자들에게 향응과 선물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대상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즉석입당」이 현금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단합대회를 가장한 선거운동이나 행사장밖 옥외스피커 설치쯤은 애교에 속한다. 무소속이나 힘없는 사람이 탈법을 하면 가차없이 처벌되지만 여권의 실력있는 인사에 대해선 법도 관대하다는게 일반국민들의 시각이다.
선거라는 용어옆엔 으레 공작과 탈법이란 말이 따라다니는 현실이 계속되는한 민주화는 「산술적」 의미를 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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