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식집 장원/요정정치·밀실상담의 대명사(그때 그자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식집 장원/요정정치·밀실상담의 대명사(그때 그자리)

입력
1992.02.15 00:00
0 0

◎정·관·재계 거물 단골로 드나들어/젓갈·김치등 정갈한 음식맛 유명/국회·정부청사이전 고객급감 문닫아음식이 정갈하고 종업원들의 손님접대 매너가 세련된 한정식집 가운데 서울 종로구 청진동 235에 있던 장원을 첫째로 꼽던 시절이 있었다.

단아한 분위기속의 장원은 제1공화국 이후 정·관·재계의 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들면서 한때는 요정정치와 밀실상담의 대명사로도 불렸던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장원이 문을 연때는 자유당말기인 58년 9월.

광주에서 같은 옥호의 요정을 운영하며 정중한 손님접대와 음식솜씨로 유명했던 주정순씨(71·여)가 서울로 진출,요정을 차렸다.

민중당 당수였던 서민호씨 소유였던 이곳이 서씨 별세후 모고무공장 사장에게 넘어갔던 것을 주씨가 당시 돈 1백30만원에 사들여 문을 열었다.

주위에 국회의사당과 관공서가 밀집돼 있어 개업초기부터 영업이 잘됐다.

주씨는 이웃 한옥 10채를 차례로 매입,76년에는 별관 3층을 신축하는 등 대지 3백6평으로 확장해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

1백여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방 2개를 포함,20여개의 크고 작은 방에는 도자기와 동양화가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출입구도 3개를 만들어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방을 따로 배치해 서로 얼굴이 마주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장원의 단골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김영삼,김종필,이후락씨 등 정계 거물들과 정주영씨 등 재계인사,정원식총리와 강영훈 전 총리 등도 출입이 잦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현역시절부터 자주 찾아왔고 특히 정부부처 초도순시때는 반드시 장원에서 유자차를 수백잔씩 배달토록 했다.

장원의 전통한식은 간이 맞기로 유명했다.

『한식에 관해서는 제일임을 자부한다』는 주씨는 수백명씩 되는 단골들의 식성을 모두 파악,식단에 배려했으며 특히 젓갈류와 김치맛이 좋아 집에까지 싸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씨로부터 요리와 운영방식을 배워 독립한 종업원도 20여명에 이르고 이들은 요정계에서 「장원대학」 출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씨는 한달에 3∼4차례씩 전체종업원회의를 열어 예절교육을 시키고 손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해 MP(헌병)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교회 권사이기도 한 주씨는 장원이 요정으로 기억되는 것을 싫어한다.

『처음 몇년간 요정으로 운영했지만 신앙생활과 배치돼 한정식집으로 바꾸었다』는 주씨는 영업시간을 밤10시로 정해놓고 시간이 되면 두부장수처럼 종을 치고 다녔다.

주씨는 단골들의 술버릇이나 숨겨진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은 「절대금기」라며 유명인들의 식성조차도 정 총리가 단촐한 상을 좋아했다는 것 이외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종업원만도 1백여명을 거느리며 30여년간 번성하던 장원은 국회의사당이 떠나고 과천에 정부 제2청사가 생기면서 고객이 줄어든데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다 빌려쓴 사채가 불어나 주씨가 지난 87년 8월 거의 맨몸으로 떠나면서 문을 닫게 됐다.

1년 가량 쉬다가 지난해 10월 종로구 신문로2가 1 주택가에 향원이라는 한정식집을 다시 시작한 주씨는 『요즘도 옛 음식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죽을때까지 음식만드는 재미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은 주씨가 떠난 뒤 Y신용금고가 인수,지배인으로 일했던 박을봉씨(58)를 내세워 명맥을 이어 운영해왔는데 박씨는 종업원을 모두 데리고 지난해 10월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옆으로 옮겨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90년 8월 D주택 소유로 넘어간 옛 장원터는 한옥일부와 연못이 철거되고 본관과 별채내부가 개조돼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송용회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