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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시장론/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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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시장론/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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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끼리 짜고 등록금을 올린다. 장학금을 조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수학생 유치의 과당경쟁을 막는다. 이런 미국 대학들의 관행은 독점금지법 위반이 아닌가.2년여의 조사 끝에,미국 법무부는 작년 5월 조사대상 57개 대학중 미국 동북부 아이비리그 8개 명문대학 등에 대한 독점금지법 위반 제소절차를 시작했다. 하버드를 포함한 8개 대학은 등록금과 장학금 담합을 하지않는다는 각서를 제출하고 소송을 모면했다. 혐의는 인정할 수가 없으나,연방정부 상대의 소송비용이 부담스러워 화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딕 손버그 법무부장관(당시)의 말은 다르다. 그의 말을 빌면,「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을 선택함에 있어서 완전한 가격경쟁의 혜택을 입을 권리가 있다. 이같은 대학 카르텔은,그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그러하듯,대학간의 가격과 할인내용을 비교할 수 있는 그들의 권리를 부인하고 있다」(뉴욕타임스 91·5·23)는 것이 된다.

그의 말은 대학교육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있다. 참 그럴듯한 비유가 아닐수 없다. 그것이 민주사회 교육의 원리에도 부합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시장에서 대학은 생산자요,학생은 소비자다. 학생이 공정한 룰을 따라 경쟁을 해야 한다면,대학도 공정한 경쟁을 해야한다. 이 경쟁의 원리를 좇아,대학이 학생을 선별한다면,학생도 대학을 선택할 수가 있어야 한다. 80년대 들어,미국 대학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스튜던트 컨슈머리즘­학생소비자주의는 이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앞에 본 미국 법무부의 움직임도 이런 생각이 어떤 흐름을 이루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육에 대하여 아무런 권한도 없는 법무부­우리나라로 치면 검찰이,당초 대학을 겨냥했던 것도 아닌 독점금지법­우리나라로 치면 공정거래법을 가지고,대학행정에 용훼한 꼴이지만,대학의 자유,자율권 침해 운운의 뒷말이 없는 것이다.

이런 바깥 세상의 사례가 우리 대학현실에 그대로 원용될 수가 없음은 당연하다. 우리 공정거래법의 녹슨 칼이 쓰잘데없는 것임도 뻔하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하나의 시장으로 유추함은 매우 유용한 시각인 것 역시 틀림없어 보인다. 시장의 원리,시장을 지배하는 경쟁의 원리가 바로 교육의 원리를 되살리는 길이라 생각되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입제도와 이에 따른 여러문제,정부와 대학의 대입정책을 생각할 적에 그런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지금 우리나라의 대입시장은 지나친 수요와 이를 따르지 못하는 공급의 불균형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수요를 억누를 수도 없고,공급을 마냥 늘리수도 없다. 이에 연유한 폐단은 과과외를 비롯한 고교교육의 왜곡이 지적될 수가 있지만,독점적인 자리를 차지한 대학의 안일과,그 결과로서의 횡포도 간과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대학교육의 「시장실패」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한 것이 지금 대입제도다. 그러나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이 제도는,근래 우리가 보고있는 사회주의의 실패나 마찬가지 혼란을 빚고 있다. 「시장실패」 못지 않은 「정부실패」를 연출한 것이다. 그 사이 대입제도의 오락가락은 이틈에서의 혼란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앞의 유추를 연장한다면,또 우리의 사회체제와 교육제도에 비추어서는,시장의 원리,경쟁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외에는 길이 없다.

그런 뜻에서 대학 신입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어야 함은,경제주체가 경제활동의 자유를 노력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다. 다만 대입의 대학자율권도 시장의 원리,경쟁의 원리를 인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은 당연히 대학선택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기본권(헌법 제31조)이 있으나,그 권리역시 시장의 원리,경쟁의 원리에 따른 제약을 받는다.

이 경우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입시장에서,소비자인 학생끼리의 경쟁이 지나친 반면 생산자인 대학끼리의 경쟁은 없다 시피 해 왔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시장에서의 우월적인 지위,이른 바 상위권대학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며,서열화의 방벽 속에 안주해 온 것이다.

이점이 바로 대입논의 또 다른 착안점이어야 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입의 대학자율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그것은 대학간의 공정한 경쟁을 가져오고,학생들의 선택기회를 늘리는 방향에서 실현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학선택이 「학력고사점수=적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결함이 시정돼야 한다는 말도 된다.

부연하면 대입의 대학자율은 대입전형의 다양화를 가져 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우수학생 유치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의 대학선택 기회도 다양해진다.

또 대학에 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대학평가인정제도가 아쉬운 것이다. 대학정보의 공개는 대학간 경쟁의 계기가 되고,학생들의 합리적인 대학선택의 길잡이가 된다.

당연히 학생들의 응시기회도 늘어나야 한다. 복수지원,본고사 날짜의 분산 등이 그 방안일 수가 있겠으나,전형방법에 따른 특차전형·분할 모집도 생각할 수가 있다. 예컨대 94년부터 시행할 새 대입방안대로라면,「내신+수학능력시험」만으로 신입생을 전형하는 대학의 특차모집을 인정하는 따위다.

꼽자면 방안은 이것 말고도 여럿이 있겠으나,모든게 대학에 달렸다고 할 수도 있다. 정어도 대입시장의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학이 너무 돌출하거나 대학들이 스스로 한줄로 서는 대입담합이 되어서는,대입제도 개선의 백약이 무효일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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