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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사랑놀음(정경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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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사랑놀음(정경희칼럼)

입력
1992.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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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는 사람은 수다를 떤다』는 것은 시인 바이런의 말이다. 『성급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탈리아 속담도 비슷한 말이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말한다. 고대 로마의 속담도 있다. 『사람은 그가 사는 곳에 있지 않고,그가 사랑하는 곳에 존재한다』3년전 미국의 점잖은 신문 뉴욕타임스는 2월14일자 사설에 각국의 속담과 시 그리고 대중가요 노랫말 등 사랑에 관한 명구 스물네가지를 옮겨놨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밸런타인데이를 축하하는 사설이다.

8년전 미국 내슈빌의 한 총포가게는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꽃과 캔디대신 자그마한 호신용 권총을 선물하라는 광고를 했다. 역시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광고였다.

세상이 바뀌어서 92년의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미국의 한 대학생단체는 콘돔을 묶어서 선물세트로 꾸민 상품을 내놨다고해서 화제가 됐다. 사랑을 은밀한 「금단의 열매」로 생각하는 우리네와 다른 세상이라 하지만,젬차 섹스화해가는 미국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손과 가슴­미국에서의 구애의 역사」라는 책에서 엘렌 로드먼이라는 여자도 말했다. 20세기의 애정관계가 점점 더 정서적 친밀감보다는 육체적인 접근으로 변해왔다고.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자유로운 애정의 전통을 갖지못한 우리 사회에서 이성관계는 아직도 「결혼」과 관련된 행사로 규정된다. 그래서 순전한 애정보다 「중매 반 연애 반」이 가장 건전한 「애정의 문법」으로 인식된다.

이런 사회에서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바람은 기형적인 「외래문화」가 될 수밖에 없다. 「중매 반 연애 반」의 세대에게는 철부지들에게 「사랑의 초콜릿」을 팔아먹겠다는 백화점과 호텔과 선물가게의 장삿속이 괘씸하다.

또 시인과 철인이 깨우친 사랑의 깊은 뜻도 모른채 1만원에서 2만원씩 들고 나가 남자친구에게 줄 초콜릿을 사려 줄서는 10대 소녀들의 열병이 망측스런 「바람」일 뿐이다.

하지만 「남녀7세 부동석」이 통할 수 없는 이 대도시의 시대에 공개적인 애정놀음을 언제까지 봉쇄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게 좋다. 애정까진 못미치는 이 애정놀음을 어떻게 건전하게 이끌것인가 하는 쪽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어른이 검소하고 건전해야 아이들이 소꿉장난도 검소하고 건전해진다는 반성이 앞서야 한다. 먼저 어른이 민족적 자긍심을 가져야 아이들이 국적없는 초콜릿놀음의 어리석음을 알게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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