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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여고터/첫 여학교… 신교육·전통 조화(그때 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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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여고터/첫 여학교… 신교육·전통 조화(그때 그자리)

입력
1992.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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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생모가 하명 1904년 개교/엄격한 교풍 “맏며느리 양성소”/삼일당,단골 행사장… 주차장등 변모1904년 4월 「덕을 쌓아 문명을 연다」(전덕계명)는 건학정신으로 서울 종로구 창성동 67번지에 개교한 진명여고는 89년 8월 서울시의 명문사학 신시가지 유치계획에 따라 양천구 목동으로 옮겨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진명의 본관건물은 지금 경비경찰의 숙소로,운동장은 정부종합청사 공무원들의 주차장으로 변했다.

서관과 남관,강당이던 삼일당은 텅빈채이고 홰나무만이 교정을 지키고 있다.

국운이 기울어 민족자주권마저 위태롭던 1904년 4월,고종황제의 계비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엄순헌귀비의 듯을 받들어 귀비의 사촌인 엄준원선생이 영친왕으로부터 하사받은 1천3백여평의 옛 창선궁터에 진명여학교를 세웠다.

『이 나라 부녀들 맹아모양 있을제/장옷쓰고 교군속에 숨겨서/배우러 나오던 진명의 옛딸들/모시어 내오던 스승들의 수고를 잊을리야/한알의 씨앗은 천으로 만으로 퍼졌어라…』

노천명시인(20회 졸업)의 개교 50주년 송축시에는 「맏며느리감 수양소」라는 명성을 얻었던 진명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있다.

빛나는 86년의 역사 그 자체가 자랑이지만 진명에는 세가지 독특한 자랑거리가 있다.

신교육을 시키면서도 옛 전통을 살려 교풍과 교칙이 엄격했다.

특히 이 학교 출신으로 제4대 교장을 역임한 박용경선생(80)은 한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똑바로 앞만보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문정희시인(46·55회)은 『상의 왼쪽가슴에 쌍백선이 선명한 교복을 입고 광화문거리를 활보하던 여고시절이 그립다』고 말한다.

진명은 활발한 과외활동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우종선생(66·시조시인)이 지도했던 문예반은 성대주최 백일장 16년 연속장원을 비롯,각 대학 백일장을 휩쓸었다. 소설가 강유일 김인숙씨,시인 김오남 이승은씨,극작가 박정란씨 등 1백여명의 여류문인들이 이곳 출신이다.

지난 90년 7월엔 문예반 출신 4백여명이 모여 「백선문학회」를 조직,기념문집도 발간했다.

농구,빙상 등 체육부활동뿐 아니라 전교생 1인1기 교육으로 스포츠를 즐겼다.

일제때부터 체육시간에 입던 고무줄 달린 팡팡한 반바지 「블루마」는 다리가 드러나 보수적 학풍속에서는 획기적인 복장이었다.

6·25전쟁중 폭격을 맞아 58년 새로 지은 삼일당은 변변한 공연시설이 없던때 각종 행사가 줄을 잇는 명소였다.

졸업생과 학부모들의 모금으로 지어진 탓에 56년 5월에 시작한 공사는 수차례 중단을 거듭하다 58년 10월 준공됐다.

삼일당의 현판은 이승만대통령이 직접썼고 현판식에는 프란체스카여사도 참석했다.

삼일당 현판은 현재 목동 교사의 자습실에 보관돼있다.

연건평 6백여평에 1천5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현대식 설비의 삼일당은 70년대 후반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집회허용을 제한받기까지 문화·종교행사의 단골개최 장소였다.

희경대라 불린 3층 발코니에 올라서면 경복궁은 물론 북악산까지 보여 학생들은 전망대라고 불렀다.

진명여고 직원 장정숙씨(42)는 『삼일당에서는 관변행사뿐 아니라 웅변대회,문학의 밤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잇달아 열려 건물 자체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진명여고는 학교를 이전하면서 엄준원선생의 동상은 옮겨갔으나 학생들의 쉼터였던 추억어린 홰나무를 두고 가는 것이 아쉬워 그 밑에 「진명여학교터」라고 새긴 조그만 표석을 남겼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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