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신질서” 국제주의 내걸어/공화/“경제를 살리자” 세감면등 집중/민주【워싱턴=정일화특파원】 92년 미 대통령선거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소련(공산주의)없는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1945∼53)이래 「소련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가 백악관 주인의 가장 중대한 자격요건의 하나였다.
그러나 소련은 12개 공화국으로 쪼개져 버렸다. 이들 12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이라는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름의 느슨한 연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또다시 모스크바의 기치아래 서로 뭉쳐 미국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CIS국중 어느 나라도 갖고있지 않으며 미국 역시 그런 일을 상상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92년도 미국대통령 선거는 「소련대응」이라는 지난 반세기간의 최고쟁점을 잃어버린채 지리멸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그래도 아직 국제주의자의 입장에 강한 미련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는 소련이 해체된 이후의 세계정치를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로 명명하고 미국이 이 질서를 재정비하고 유익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월21∼22 양일간 국무부 8층 회의실에서 세계47개국 대표를 모아 CIS지원회의를 개최했던 것도 그런 의지의 표명이고 또 미국 유권자에 대한 신세계질서 개념의 시위였다.
그러나 미국은 CIS지원 회의에서도 실질적 리더역할을 하기에는 이미 벅차 보였다. 독일,일본 등에 비해 이 회의를 통해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없었으며 전체 CIS지원 부담의 불과 2%만을 갖고 CIS지원 회의를 조직했을 뿐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다시 들고 나오려 한다. 그리고 북한 핵문제도 기회있을때마다 강경한 입장으로 이를 국제문제화 해왔다. 그러나 이라크나 북한 핵문제가 중요하긴해도 지금 미국 유권자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국내 경제문제,의료보험문제,실업문제 등에 비하면 그 중요도가 10분의 1도 안된다.
부시 대통령의 신세계질서 개념은 예선과정을 통해 더 탈색될 가능성이 짙다. 공화당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후보로 도전하고 있는 패트릭 부캐넌,데이비드 듀크후보는 부시 대통령의 신세계질서 개념과 같은 국제주의를 공화당 정책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고 그후 CNN TV의 보수강경주의 토론자였던 부캐넌은 공화당 정책은 국제주의보다는 고립주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제일」(America First)이라는 기치아래 부캐넌은 일본에 대해 가차없는 무역제한 조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먼저 살고봐야 한다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이 만일 뉴햄프셔 예선에서 부캐넌 듀크 등을 75%이상의 표차로 누르지 못한다면 그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입을 것으로 선거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어떤 여론조사는 2월8일 현재 부캐넌 인기가 40%까지 올라갔다고 말하기도 해 부시의 완벽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돼 있다.
공화당내에는 역사적으로 국제주의자와 고립주의자의 대결이 깊숙이 자리 잡아왔다. 1952년 선거 당시 아이젠하워와 태프트와의 대결,1964년의 골드워터와 록펠러의 대결은 바로 당내 국제주의자와 고립주의자의 대표적인 대결이었다. 만일 부캐넌 지지가 늘어나 부시쪽을 압박한다면 부시의 국제주의는 대통령 본선에서 별다른 효력을 발생할 수 없게 될 것이 확실하다.
민주당측은 아직 아무도 국제주의를 심각하게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 대한 무역규제에 대해서는 빌 클린턴,제리 브라운,봅 케리,폴 송거스,톰 하킨 등 후보들이 「모두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난 80년 선거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하나를 갖고도 대통령 당락을 결정지을 정도로 국제문제를 심각히 다뤘는데 92년 선거에서는 도무지 그런 기색이 없다. 대신 국내문제로 쟁점이 쏠려있다.
민주당은 공화당 정부를 향해 국내문제에 속수무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벌써 2년간 계속되고 있는 경기침체의 회복을 위해 부시 행정부가 뭘했느냐고 묻고 있다. 90∼91년만해도 2백10만의 실업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누구의 정책과오인가라며 민주당 후보들은 TV광고를 통해 공화당 정부를 공격한다.
민주당 후보들은 미국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재정금융 정책을 펴고 있다. 세금을 감면해 기업투자를 늘리는 한편 중·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경기를 풀어나겠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과 봅 케리는 자본투자이익세의 감면과 중산층의 소득세 감면을 주장했다. 브라운 전 캘리포니아주 지사는 모든 연방세금을 폐지하고 일괄적으로 수입의 13∼14%를 세금으로 받는 평면세금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금융재정 정책안은 민주당 후보들끼리도 서로 비판하고 있다. 예를들어 브라운 후보의 평면세금 제도는 부자를 더욱 더 부유케하고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하는 현상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비난받고 있으며,중산층 세금만 감면하겠다는 클린턴 후보안은 그 전체감면 액수가 1인당 1일 1달러 규모도 안돼 아무런 경제효과도 창출하지 못한다고 비난받고 있다.
미국의 경제는 사실 금융재정 정책으로 회복하기에는 너무나 쇠약해 있다. 일본과 독일에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다. 미국산(Made in USA)이 일본산(Made in Japan)이나 독일제(Germany Made)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체제로서는 정부가 개입하기 어려운 기업투자의 문제,기술개발의 문제,노동의 질의 문제가 더 본격적인 핵심이다. 미국은 마약,AIDS,범죄,홈리스(집없는 떠돌이)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사회문제를 뜯어고치려는 유권자단체가 보다 많이 솟아나야 대통령 선거는 소련없는 맥빠진 분위기로부터 활기를 되살려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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