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를 중흥시킨 아돌프 옥스는 1911년 겨울 어느날 남루한 차림의 한 방문객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다름아닌 잘곳이 없어 돈을 구걸하러온 걸인이었다. 옥스시장은 그에게 몇달러를 준후 다음에 오면 일자리를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피산직전의 타임스를 인수,이미 전성기에 진입시킨 뉴욕타임스의 사장은 이 걸인과의 약속만으로 이 일을 끝내지 않았다. 그는 즉시 타임스의 기자에게 뉴욕시일원 극빈사례 1백가지를 취재해 보도케 했다.당시 뉴욕은 이태리,폴란드 등 유럽이민의 홍수로 기아·질병 등 커다란 문제들을 안고있었고 이 보도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정확히 1912년 12월15일 「풍요가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돕자는 타임스의 캠페인은 그래서 시작한지 열흘도 안돼 엄청난 돈이 순식간에 모금됐다.
○풍요가 미치지 않는 이들
올해로 창간 1백41주년이 되는 뉴욕타임스가 80년째 계속하고 있는 뉴욕타임스 극빈구호기금(NYT·NEEDIEST CASES FUND)은 이렇게 시작됐다.
해마다 12월1일이면 어김없이 타임스의 메트로판을 통해 캠페인의 개시를 알리고 이듬해 2월말 지상캠페인이 끝날때까지(모금은 연중) 헌금에 얽힌 얘기들을 낱낱이 보도한다.
몇십만 달러에서 몇달러의 헌금까지 그 액수의 다과를 가리지않는 이 기사는 이 캠페인에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고 그 돈은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를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이 캠페인의 거울이기도 하다. 모금된 금액은 전액 뉴욕시의 7개 자선단체에 보내지고 그 단체의 판단에 따라 쓰여지는데 모금에 관한 일체의 간접비는 타임스가 부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에게 이웃돕기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재 등 국가적인 재해를 당할때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 모인다. 내는것도 손 크게 때론 수억까지 선뜻 내는이도 있다. 지난달말 마감한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모두 1백56억8천9백만원이나 걷혔다. 그 전해의 1백32억원보다 18%가 증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돕기나 나누기가 우리의 생활속에 얼마나 일상으로서 뿌리내리고 있느냐에는 아직 시원한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일 이다. 남의 시선을 받을만한 일에는 달아오르듯 나섰던 사람들도 지나고 나면 그뿐. 이웃의 불우를 까맣게 잊고만다. 그것은 인색이 아니라 아직 무지일뿐 이다.
과소비가 한창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던 지난해 어느 경제학자는 「불노부」 계층이 과소비의 정범이라고 한적이 있다.
부동산 등 투기이익을 챙기는 층,실수입에 비해 정당한 세금을 내지않는 층,자고 일어나면 재산가치가 절로 올라가는 층 등이 어울려 지금 이 사회의 과소비를 주도하고 여기에 고학력의 산업 관료계층이 충실히 종범으로 따르고 있으며 여기에 다시 「과소비를 통한 사회적 지위경쟁」의 분위기를 인내하지 못하는 「모방소비」층,이미 부의 축적을 포기한 「실망소비」층까지 합세해 실로 과소비의 대합창을 연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의미있는 소비 일깨워야
여기서 생각해야할것은 소비의 증가,소비의 동기 그 자체만이 아니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것 같은 우리의 소비행태요 윤리이다.
덮어놓고 더큰 차,더 값비싼 옷,더 호화스런 결혼식 등 무한확대식의 소비풍조속에서 철저히 망각되고 있는것이 무엇인가,굶주림은 한참 벗어난 지금 왜 우리사회는 여러 다른나라들처럼 외적인 여유를 내적인 충족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가 등을 진지하게 물을때도 됐다.
과소비의 거센바람을 잠재우는 것은 우선 범국가적인 절제의 호소다. 하지만 의미있는 소비에 대한 일깨움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될것이다.
액수의 다과에 관계없이 내가 누구를 돕고 있다는 「정신적풍요」에 만족과 자부를 느낄 수 있는 사회,「함께 사는 사회」로의 유도가 필요하다. 특히 국가 분위기 통솔에 가장 큰책임이 있는 정부가 이에 솔선해야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통계만으로도 2백17만의 생활보호대상자,24만의 의료부조대상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통계일뿐 각양의 「불우」는 우리가까이에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일보사는 「사랑의 쌀」 3차연도의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올해 3번째로 접어드는 이 운동의 목표는 적어도 우리주변에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없애주겠다는 것,더 나아가 북한동포,해외동포,해외빈국에 이르기까지 이런 목표의 실현을 넓혀가겠다는 뜻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내의 불우한 소년소녀가장,장애자,무의탁노인 등에 대한 지원은 물론 지난 연말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수단에까지 1천톤의 쌀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액수의 다과에 관계없이 참여해준 2차연도 24만 참여자들의 「높은뜻의 소비」로 가능했던 일들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이웃의 「불우」는 그만큼 줄어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이 운동의 커다란 보람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의 또다른 뜻이 있다면 우리에게 이웃을 돕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창구가 1년내내 우리곁에 열려있다는 것이다.<편집담당 상무>편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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