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쟁점/부시 「소득세 감세」등 긴급처방/타후보들은 “미봉책” 일제비판/어느 누구도 묘책제시는 못해 암울한 경제 반영오는 11월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의 쟁점은 회생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는 국내 경제문제다.
특히 아직 후보출마를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공화당의 후보로 지명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는 재선을 가로막을 수 있는 최대의 장애가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외교에 능하고 걸프전 승전의 영광으로 한때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부시 대통령이 최근 유권자들로부터 역대 대통령중 가장 낮은 지지를 받게된 이유도 바로 경제침체 때문이다.
민주당의 후보들은 물론 공화당의 경쟁자마저 불황을 쟁점으로 들고나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할 속셈이어서 미국경제가 향후 수개월 사이에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호전되지 않는 한 부시 대통령의 재선가도는 험난할 수 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상·하 양원 합동의회에서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당초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많은 시간을 경제부흥책에 할애하고 오늘의 미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임을 강조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걸프전 승리이후 「신세계질서」와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던 부시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의 절반 이상을 경제 분야에 할애한데 대해 일부에서는 그가 마침내 『경제에 굴복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을 이처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미국 경제상황은 신속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10년만에 처음으로 산업생산이 전년 대비 1.9% 줄어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포드,제너럴 모터스(GM),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도 8년만에 최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총 68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GM은 오는 95년까지 4년간 21개의 공장을 폐쇄하고 모두 7만5천명의 사원을 해고할 방침을 밝혀 내외에 충격을 던졌다.
또 전세계적인 체인망을 자랑하는 울워드사가 판매부진으로 전체 체인점의 10%인 9백개의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며 지난달 27일에는 세계 최대라는 메이시백화점도 경영적자를 견디지 못해 연방법원에 파산 보호신청을 냈다.
지난해 미국내 기업의 파산신청도 모두 1백만건으로 이 역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들어 실업률이 7.1%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면서 하루 2천5백명 이상이 길거리로 나앉고 있다. 무료급식 신청자도 부시가 집권한 89년 월평균 1천8백만명에서 지난해 10월에는 2천2백만명으로 늘어나 미국인 10명중 1명이 정부의 보조로 생계를 이어가는 비참한 지경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까지도 경제침체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앨런 그린스팬 FRB총재는 미국 전체에 「심각한 자신감 상실」 현상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난해 인플레율은 3.1%로 안정됐으며 무역적자도 8백30억달러로 다소 줄어들었으나 이같은 요소들이 경기침체라는 「대세」에는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세계의 주도자」로서 자처하던 부시 대통령이 이같은 미국 경제의 심각성을 뒤 늦게 깨닫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 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초 예정된 일본,한국 등 아시아 순방을 한달여 연기하는 외교상 「무리수」를 둬가면서 까지 자신의 재선에 심각한 걸림돌로 떠오른 경제난 해결책에 고심했다.
그러나 지난달 6일 수십명의 기업인을 대동하고 아시아 태평양지역국가 순방에 나섰던 부시 대통령이 얻은 것이라고는 일본 방문중 만찬석상에서의 졸도라는 또 다른 악재와 함께 일본으로부터 「미 3대 자동차사의 반나절 일거리」에 불과한 분량의 미국산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을 구입하겠다는 약속이 고작으로 「자동차 세일즈맨 부시」라는 비아냥까지 곁들여졌다.
여기에다 그의 방일 직후 『미국은 일본의 하청업자에 불과하며 대일무역 적자도 그들이 게으른 탓』이라든가 『미국 근로자들은 근로윤리가 결여되어 있다』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이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미국민들의 자존심 까지도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부시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소득세 환급 확대 ▲주택구입 보조금 지급 ▲양도세 축소 ▲기업투자 촉진 등을 골자로 한 경기회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또 향후 5년간 국방비도 5백억달러 삭감키로 했다.
부시 진영은 예컨대 소득세 환급확대를 통해 미국민 1인 연평균 3백45달러가 환급되며 향후 6개월간 2백50억달러의 구매력이 창출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경기부양책을 통해 지난 1년반 동안 침체로 일관했던 건설·기업 설비투자 등의 국내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물론 공화당 내 대통령후보 경쟁자인 패트릭 부캐넌마저 이같은 경제정책이 「선거용」이며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계속돼온 「공급위주정책」으로 『구조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 대통령후보 경쟁자들은 또 국정연설에서 제시된 양도세 감면 등이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며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이 실제로 얼마만한 국내수요를 창출,오랜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소생시킬 수 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미국 언론들은 대부분 「별게 없다」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는 어느 후보경쟁자들도 그의 정책을 뚜렷이 능가할 만한 「장기적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진정한 지도력,즉 유권자들에게 「지금 곧 바로 자신을 희생하시오」라고 외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결코 희생하라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은 선거정국에 돌입한 미국의 어려운 선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워싱턴=정일화특파원>워싱턴=정일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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