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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공천자 여러분/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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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공천자 여러분/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입력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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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점짜리 공천어찌되었건 일단 예를 갖추어 축하부터 드리고자 합니다.

공천이 국회진출을 위한 현실적 제1의 관문이고 지역에 따라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란 괴이한 등식마저 성립되는 현실이고 보니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마냥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기뻐만하고 있을때가 못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눈빛이 축하와 부러움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대다수 양식있는 국민들은 이번 공선결과에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선 의회민주주의란 직업정치인을 세습이나 임명에 의해서가 아니라,후보들의 자유경쟁 원칙과 국민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선진국과는 달리,우리나라의 경우 공천이 여·야를 막론하고 당선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선거에 앞서 선택의 폭을 미리정해 버리고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공천과정에 민의의 반영이 전혀 제도화 되어 있지 않고 사실상 위로부터의 「임명제」 형식이어서 대표선출에 필수적인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같은 원천적 비민주성에다가,실제 공천작업에 마저 참신성,도덕성 등의 당위적 기준이 실종되고 「당선가능성」이란 모호한 말로 포장된 「돈의 동원 능력」과 「패거리」 지분싸움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물갈이」의 참신한 인물이 그리 보이질 않습니다.

여·야 모두 현역의원 탈락률이 과거의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공천작업과 그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총체적인 평가는 대학에서의 성적으로 말하자면 좋게 보다 E학점 정도입니다. 곧 사실은 낙제이지만 「재수강」의 기회를 허락하는 평점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재시험」의 선거운동

여러분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원내진출의 꿈을 이룰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여러분들이 다가오는 선거의 분위기와 양상을 좌우할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지난 일에 대한 불평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 보다는 여러분들이 「재수강」을 통해 합격점을 따기를 독려하고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재시험」의 기회가 바로 선거입니다. 여러분이 국민의 대표로서 합격이냐 낙제냐를 결정하는 기준은,결과로서의 당·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어떠한 선거운동 행태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선거 그 자체가 곧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민주주의에 있어 선거는 불가결한 것이지만 선거만 한다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되는것은 아닙니다. 독재와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자유선거가 실시된다고 해서 민주체제가 정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알제리나 남미와 동구의 여러나라들이 겪고 있는 시련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곧 이른바 「투표함 민주주의」(Ballot Box Dem­ocracy)만으로는 참된 민주체제가 확립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선거의 질」 입니다. 민주주의에 관한 학자들의 정의는 다양하고 필요조건도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법과 게임의 규칙이 존중되는 「시민문화」(Civil Cult­ure)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엄군의 탱크라도 교통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전통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는 정착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선거와 관련시켜 말하자면 민주체제를 성립시키는 최초의 출발점인 선거가 깨끗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식을 한번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낙보다 역사인식을

여·야의 공천자 여러분! 그리고 정당 지도자 여러분! 이제까지 여러분은 이런 저련 현실을 구실삼아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라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에만 집착하여서는 안됩니다.

국가적·국민적 차원에서 보면 누가 당선되건 집권당이 바뀌건 말건 그런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결과에 승복하고 민주적 방법으로 경쟁을 되풀이 해 나가는게 우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마저 금권과 관련 그리고 지역감정이 판을 칠 경우 이 나라 민주주의는 끝장입니다. 그 같은 방법으로는 선거에 이기고도 역사와 국민앞에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992년의 14대 총선과 대선은 전말 「중대선거」 입니다. 한국의 21세기를 좌우할 많은 문제,곧 주저앉고 있는 경제의 재건,남북의 통일,새로운 국제질서속에서의 좌표와 전략실정 등에 관해 해답을 내놓아야 할 일차적 책임이 이번 선거에 나선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있습니다. 타락선거로 민주주의와 정치를 망쳐놓고는 21세기를 위한 국가경영이 제대로 될리가 없습니다. 선거에 즈음하여 당·낙보다도 이같은 역사인식부터 지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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