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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경제위기/한상진칼럼(밖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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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경제위기/한상진칼럼(밖에서 본 한국)

입력
199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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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오늘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것인가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민주화가 희생되는 방향의 위기처방은 이미 오래된 것이고 매력도 없지만 민주화를 경제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동유럽의 실험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 주제는 우리에게도 어느덧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면서 선거가 경제를 더욱 망친다는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정치의 체질 개선요구는 고조되고 있지만,정당공천 과정에서부터 실망하는 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무룻 전환기의 혼란을 벗어나 민주정치를 올바른 반석위에 올려 놓으려면 무엇보다 정당과 국회의 대표성과 문제해결 능력이 크게 신장되어야 한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전환기의 많은 나라들에서 이들 대의제도의 실상은 아직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권위주의 유산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일수록 정당과 국회의 기능은 부실화되어 있고 정치문화,정치행태의 낙후성도 심각하다. 정치권의 분열적 이기주의,책임윤리의 빈곤,국가 권력기구에 의한 간섭과 통제,급진운동의 도전,사회적 신뢰저하는 신생민주주의가 오늘날 어디서나 부딪치기 쉬운 미해결 과제들이다.

경제위기는 더 심각하고 파장효과가 크다. 경제가 엉망인 상태에서 민주화가 전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전례없는 시장제도의 전면적 도입과정에서 러시아와 동유럽이 겪고 있는 혼란과 고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미의 경제 역시 위기적이다. 우리는 이들과는 달리 경제호황에서 민주화를 시작했지만 우리도 근래에는 경제비상이 걸렸다. 국제경쟁력이 현저히 약화되는 가운데 무역흑자는 어느덧 엄청난 적자로 돌아섰고 고급인력의 실업률,인플레도 심상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우위의 논리로 정치를 규정하려는듯 정주영씨는 얼마전 『6공 정부가 5년 더 집권하면 나라 경제가 망할 것 같아 신당을 창당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 뒤 노태우대통령은 경제난을 이유로 여야가 오랜 협상끝에 합의하여 법률로 정한 지자제 단체장 선거를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말았다. 실로 대담한 발언이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 의미를 되새겨 볼때 중요한 선택이 우리앞에 오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단적으로 말해 경제위기가 심각하므로 민주화의 속도를 더욱 늦출 것이냐,아니면 민주화를 더욱 진행시켜 권위주의 시대에는 불가능한 사회적 협력과 동의를 얻어내 그 힘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의 선택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민주화가 경제위기를 부채질하고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반대로 민주화의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번영을 누리는 나라도 많다. 스웨덴은 이점에서 이미 고전적인 성공사례지만 1982년 이래 스페인 사회노동당이 거둔 경제개혁 성과도 인상적이다. 아르헨티나 알폰신 정부와 메넴정부의 노력도 주목할만한 것이다.

이들과 비교해 볼때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외형상으로 양호한 면도 있지만 막상 위기적 국면에서 이를 지켜주는 사회적 버팀목이라 할까,민주화를 이끌어가는 철학·정치력·제도장치·시민사회의 능력이 저조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민주화를 경제개혁의 지렛대로 삼는 경륜있는 철학과 리더십이 특히 집권층에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의 유산이 특별히 강한 우리 현실에서 정당과 국회의 지속적인 권위실추와 왜소화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를 생각해볼때,아무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법을 앞서 지켜가야할 대통령이 법을 어기면서 지자제 단체장 선거를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은 결국 정당과 국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 셈이 되고 이것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여야의 선거협약과 시민운동의 감시,법집행에 근거하여 시민의 광범위한 협조로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풍토를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경제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할때 그 해결을 위해 정부가 잘 선택된 정책수단들을 효과적으로 의연히 구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만 어떤 정치적 계산에 의해 민주주의 일반원칙을 후퇴시키거나 의회제도의 권위를 더욱 실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민주화의 연속선상에서 경제발전의 새로운 토대를 쌓는 발전모델을 적극 추구할때가 되었다고 본다. 권위주의로의 복귀는 전연 문제해결의 길이 아니다. 전환기의 경제위기를 참된 민주화와 사회적 협조로 극복한 스페인의 경험은 우리에게 퍽 암시적이다.<서울대교수·뉴욕 컬럼비아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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