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자격 정주영씨와 큰 차이/당분간 남북경협 창구역 맡을듯/공산권 진출 대우 북서 높이평가/김 회장 통일후의 거대시장 형성노려남한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정부의 공식초청을 받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방북과 관련,그동안 나돈 수차례의 방북설의 진위와 추진경위,배경 및 예상되는 성과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많은 남한 기업인 중 왜 김우중회장을 초청대상으로 선택했는가,경제협력문제협의 외에 김 회장의 또 다른 임무는 없는가,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과는 어떻게 다른가,김 회장이 그동안 몇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는가 등에 온 국민들이 궁금증을 더해가고 있다.
관계당국과 재계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회장이 이번 방북을 포함,모두 다섯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측에서 공식확인을 않고 대우측에서도 부인을 하고 있지만 김 회장의 다섯차례 방북은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김 회장의 첫 방북은 북경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91년 2월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앞서 89년 3월에 김 회장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설이 나돌았으나 북한인사와 페테르부르크에서 접촉한 것이 와전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소문은 김 회장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전자박람회에 참석한 뒤 조선민항편으로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는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김 회장이 북한에 르망 3백대를 선물로 보냈다는 대우자동차의 미국측 합작선인 GM의 맥 다니엘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사장의 발언을 근거로 한 것. 그러나 김 회장은 르망 선물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김 회장의 첫 방북은 북경아시안게임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있던 김 회장은 북경에서 중국고위인사의 주선으로 북한측 고위인사와 자연스럽게 접촉했다는 것.
이때 북한당국은 김 회장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판단,우리 정부의 한 고위인사를 통해 김 회장이 편리한 시기에 북한을 방문,상호관심사에 대해 협의할 것을 제의,이듬해 2월 극비리에 북경을 거쳐 방북이 이루어졌다는 것.
두번째 방북은 지난해 5월 세계청소년축구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해 평양을 공개적으로 방문함으로써 이뤄졌다. 알려지기로는 남북단일팀 구성문제로 김 회장이 한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돼있으나 6월에 세번째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때는 표면적인 이유는 단일팀 구성문제 협의였지만 북한이 수출산업 육성 등 경제개발에 대한 자문과 협의를 위해 김 회장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네번째 방북은 지난해 11∼12월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대우측은 이때의 방북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 시기에 북한을 방문한 교포무역인에 의해 평양에서 김 회장이 목격됨으로써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방북은 다섯번째가 되는 셈인데 북한이 정무원부총리 김달현의 이름으로 공식초청장을 보내고 이 사실을 공개까지 한 것은 김 회장이 기밀유지가 어렵다며 공개적인 공식 방북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북한 정부도 남북합의서 교환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태도를 바꿨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많은 기업인중 북한이 왜 하필 김 회장을 협력파트너로 선택했을까. 이 의문을 풀려면 정주영씨의 방북결과와 김 회장의 사회주의국가와의 인연을 살펴봐야 한다.
89년 1월 정씨의 방북은 정부가 아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 허담)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우리 정부에서도 개인의 친지방문으로 방북을 승인했다. 북한의 태도도 정씨 방북을 비밀에 붙인데 반해 김 회장의 방북은 공개,입장차이를 보여주었다. 또 김 회장은 김일성주석을 만났으나 정씨는 그러지 못했다. 특히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정씨와 여러가지 사업의향서를 교환했던 북한은 정씨가 귀국후 우리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보여 민간차원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북한이 김 회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관계자들은 지난 75년부터 계속된 김 회장의 사회주의국가 편력이 북한당국에 긍정적으로 비쳤을 것으로 분석한다. 김 회장은 리비아 나이지리아 수단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의 사회주의국가,동구권의 헝가리 구동독 체코,소련,중국,베트남 등 많은 사회주의국가에 진출,무역뿐만 아니라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경제개발의 모델을 제시하는 등 활발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같은 김 회장의 전력을 북한이 좋게 평가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외화부족에 시달려 단시일내에 경공업을 중심으로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인민들에게 생필품 공급을 확대하는 일이 시급한 북한으로서는,섬유 등 경공업으로 기업을 일으켜 자동차·조선 등 중공업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한 김 회장이 북한의 좋은 조언자가 될 것으로 믿기에 충분하다는 것.
사업에 관한한 동물적이라 할만큼 뛰어난 감각을 지닌 김 회장은 『남이 발을 들여 놓지 않은 곳을 개척하라』는 지론대로 아프리카 동구 소련 베트남 중국을 섭렵한 뒤 다음의 최대시장은 통일후의 한반도라고 믿고 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인구 7천만명의 시장이 아닌 만주·시베리아를 포함하는 인구 2억∼3억의 거대시장이 형성된다는 것.
북한이 김 회장을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선택하고 김 회장 역시 남북합작에 대단한 열의를 보이는 것은 바로 북한의 필요성과 김 회장의 포부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가 김 회장에게 정부를 대신한 민간경제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도 정씨의 방북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정씨는 북한당국과 의향서를 교환하는 등 월권행위를 한뒤 정부로부터 미움을 샀는데 김 회장은 북한 정부의 공식초청에다 정부로부터 민간경제 사절단으로서의 지위도 부여받았다.
정씨의 방문지가 금강산과 통천(정씨의 고향)을 중심으로 이뤄진데 비해 김회장은 청진 나진 해주 등 북한이 경제특구 지정을 추진하는 지역을 주로 방문한 것을봐도 김 회장의 방북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계는 김 회장의 방북 성과가 금방 가시화되면서 남북경제협력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적어도 남북간의 공식적인 상설창구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김 회장이 남북경협창구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김 회장이 경협문제외에도 정치적인 「보따리」도 챙겼을 것으로 보고있다. 남북관계의 급진적인 개선과 관련,김 회장이 남북정상회담의 조기성사 타진 등의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것.
김 회장이 귀국해서 보따리를 풀어봐야 방북의 전모가 드러나겠지만 김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경협은 물론 정치차원에서도 예측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방민준기자>방민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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