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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경비병 유죄판결 파장(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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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경비병 유죄판결 파장(세계의 창)

입력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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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도적 명령 수행은 범죄”/구 동독체제 심판… 과거청산 선례/책임자 처벌없어 “희생양” 여론도/“유죄” 대법원서도 유지될지는 미지수【베를린=강병태특파원】 베를린주 법원은 20일 베를린장벽 붕괴전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려는 동독청년을 사살했던 전 동독국경 경비병에게 3년6개월의 금고형을 선고했다.

동독체제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각종 비인도적 행위와 비리에 대한 사법적 심판의 첫 사례로 주목됐던 이 재판에서의 유죄선고는 다른 국경탈주자 사살행위 및 간첩행위 등에 대한 기소 및 재판에 선례가 될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유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주권국가였던 동독체제하의 합법적 임무수행 행위를 서독법원이 심판할 수 있느냐는 법률적 논란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날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재판은 장벽붕괴 9개월전인 89년 2월5일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려는 동독청년 2명에게 총격을 가해 이중 1명을 사살하고 다른 1명에게는 부상을 입힌 장벽감시병 4명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에게 사살 당한 크리스 구프로이는 28년간 동서독간 장벽에서 희생된 탈주희생자 2백여명중 마지막 희생자였다.

과거 서베를린 검찰인 베를린주검찰은 이들 장벽감시병 4명을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지난해 9월 재판이 시작됐다.

정치성 짙은 이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장벽 탈주자들에 대한 총격은 명령에 따른 정당한 임무수행이었으며,군복무와 장벽근무 거부에는 형사처벌 등 큰 불이익이 따라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특히 이들은 『동국체제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장벽과 각종 탈주감시장치는 국가안보에 필요한 것으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장벽 감시병으로 선발된 후 특별훈련 과정에서 장벽 탈주자들은 「반역자」나 「돼지」라고 교육받았으며,탈주자들에 대한 총격명령을 어길 경우 처벌된다는 지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변호인들은 동독체제하에서 이뤄진 행위를 「다른 나라」인 독일법원이 재판할 수 없다는 재판관할권 문제부터 제기했다. 또 피고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징병된 사병들로,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수 없다고 항변했다.

특히 변호인들은 총격명령을 내린 호네커 전 동독국가원수 등 동독체제의 모든 고위 권력자들과 군 지휘관들을 제쳐두고 최말단하수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언론과 법조계에서도 이들 장벽 감시병들을 동독체제에 대한 사법적 심판의 표본으로 삼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현명한 짓이냐는 비판이 높았었다.

그러나 서독 법관들로만 구성된 재판부는 이같은 항변을 모두 배척했다.

재판부는 장벽 탈주자들에 대한 총격이 동독법률상 합법적이란 주장에 대해 『한 국가가 정의와 불의,합법과 불법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돼 있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탈주자에게 사살을 명령하는 법률이나 규정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특히 『불과 37m 거리에서 총격을 가한 것은 총살과 같아 단호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이에 따라 탈주자를 직접 사살한 장벽 감시병 잉고 하이리히는 금고 3년,다른 탈주자에게 부상을 입힌 안드레아스 퀴엔파스트에게는 금고 2년에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했다. 그리고 단순히 총격에만 가담한 나머지 피고 2명에게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시내용은 명령수행 여부와 관계없이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란 개념을 적용,나치전범들을 단죄했던 전례를 상기시킨다. 검찰당국도 당초부터 나치전범처리 전례를 원용할 것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감시병들의 행위를 나치전범과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유죄판결이 대법원의 최종확정 판결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를 회의하는 시각도 많다.

독일 정부와 검찰이 동독체제의 실권자들을 제쳐둔 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장벽 감시병들을 먼저 사법적 심판대에 올려놓은 것은 오히려 「나치전범 재판」식의 과거청산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즉,이들에 대한 재판과정에서의 법률적 사회적 논란을 통해 동독체제에 대한 사법적 심판의 의의에 대한 회의를 조장하려는 기미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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