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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그후 1년… 국내기자론 첫 이라크 현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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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그후 1년… 국내기자론 첫 이라크 현지르포

입력
199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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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봉쇄 파고 “유아 8만명 사망”/의약·생필품 “암만 유일한 관문”/시설복구 한계… 짓다만집 즐비/기름값만 폭락… “석유수출 재개” 희망섞인 소문 돌아【바르다드=김현수특파원 제2신】 걸프전이후 이라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부세계와 벽을 쌓고 있다. 현재 이라크로 통하는 유일한 관문은 요르단 암만에서 출발해 15시간 이상을 달린후 바르다드에 도착하는 육로뿐이다.

암만에서 5시간쯤 달려가면 나타나는 이라크 국경세관은 입국하는 사람보다는 출국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요르단 사람이 이라크에 들어가려면 입국비자가 필요하지만 이라크인은 무비자로 요르단에 입국할 수 있다. 물건을 사러 요르단으로 나가는 이라크 사람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향하는 차량은 대형 유조차가 주류를 이룬다. 반면 요르단에서 이라크쪽으로 질주하는 차량중에선 물건을 가득 실은 트럭이 단연 많다. 바로 이 트럭들이 1년6개월동안 경제제재에 시달리고 있는 이라크인들에게 갖가지 생활용품을 날라다 주는 반가운 손님들이다.

걸프전이 끝난후 이라크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상품이 부쩍 늘었다. 바그다드 상점에 진열돼 있는 이들나라 제품은 그릇 의류 등에서 전자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에따라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의 대사관이 아직 복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동남아시아 국가의 대사관은 현재 정상업무를 하고 있다.

바르다드 시내에는 이밖에도 이란 터키 등 인접국가에서 생산한 식료품이 자주 눈에 뛴다.

경제봉쇄 속에서도 이처럼 외국의 물품이 이라크에 유입되고 있지만 이라크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사정을 난생 최악의 궁핍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라크 중앙은행 신입사원의 초봉은 1백50디나르(실제가치 15달러 미만) 정도다. 한데 바그다드와 암만사이를 오가는 14인승 버스의 요금이 2백디나르이다. 바그다드 시내의 괜찮은 음식점에서 파는 케밥이란 양고기 요리는 보통 20디나르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라크인이 굶지않는 것은 정부에서 쌀 담배 밀가루 등 생필품 및 일용품에 대해 염가의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학교에선 학비면제뿐만 아니라 학용품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경제봉쇄가 지속되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약품 부족 현상이다. 병원에선 수술시 필요한 응급약품과 전쟁전에는 흔하던 기타 약품까지 고갈돼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 당국도 신문과 TV를 통해 약이 없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가엾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이라크정부는 지난해 의약품 부족과 우유부족으로 사망한 유아의 수가 8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적십자사 등 국제기구가 인도적 차원에서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데다 그나마 시효가 지난 약품이 많아 약효가 떨어진다는 불평이 높다. 이때문에 직원이 모두 철수해 폴란드대사관에서 대신 봐주고 있는 미국대사관 앞에는 텐트를 쳐놓고 단식시위를 벌이는 이라크인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이라크 정부는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파과된 전력 통신 교량 상수도 시설 등의 복구에 박차를 가해 한동안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해 11월 바그다드 시내의 주무리야 다리가 복구된 날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직접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등 대내적인 축하행사가 벌어졌다. 물론 공로자에 대한 표창수여도 요란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노력도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자재나 부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그동안 완전파괴 됐거나 건설중에 있던 시설물의 부품을 뜯어 부분 파손된 시설을 보수해왔는데 그것마저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로변에는 짓다만 집과 부숴진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그다드시내 번화가의 하나인 마스바 거리에는 전에 레스토랑 이었던 건물이 공습 첫날 30m가량 떨어져 있는 전화국 건물을 겨냥해 투하된 폭탄에 잘못맞아 부서진채 방치돼 있다.

다음날 끝내 폭격을 맞아 파과된 전화국 건물은 지금 신축됐지만 초정밀 폭격의 오차 30m에 희생된 레스토랑 건물은 우선순위에 밀려 아직도 복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복구작업이 한계에 부딪침에 따라 이라크 정부는 내심 외국기업의 진출을 바라는 눈치다. 특히 재산관리 및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걸프전이후에도 계속 이라크 사업본부를 유지하고 있는 현대에 대해선 각별한 배려를 해주고 있다. 50회선밖에 안돼 정부주요 기관에 우선 할당한 텔렉스회선중 2회선을 현대측 요청에 따라 배당해 주기로 약속할 정도다.

이라크의 복구작업은 그러나 결국 경제제재가 해제돼 석유수출이 재개된 후에나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직후 정유시설이 파괴돼 한때 3∼4개월동안 금값처럼 치솟았던 기름은 정유시설이 복구된 지금 이라크에선 유일하게 값이 폭락하고 있느 품목이다. 미네럴워터 1ℓ의 값이 1디나르 5백필인데 비해 휘발유 1ℓ는 75필에 불과하다.

이라크인들 사이에선 요즘 이미 석유수출이 재개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보다 신중한 사람들도 3월께엔 석유수출이 다시 시작되리라고 희망찬 전망을 한다. 이러한 소문과 관측은 아직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라크인들의 자그마한 소망일뿐이다. 하지만 이런 꿈들은 물처럼 흔한 석유를 팔아 옛날 석유수출 세계2위의 잘살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이라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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