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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없는 연하장/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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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없는 연하장/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2.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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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초부터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연하장이 이번주를 끝으로 배달되는 것이 없다. 올 연하장은 커다란 선거를 줄줄이 앞두었기 때문인지 정치인이니 정치지망생들의 연하장이 늘어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체신부에 따르면 90년 12월11일부터 91년 1월10일까지 체신부가 정한 우편물소통 강조기간동안 취급한 연하장은 2억7백만통이다. 이는 매년 10%정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91∼92년)는 경기침체와 과소비억제 등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의 연하장이 늘어난 것만 봐도 정치철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신문사에 근무하다 2보니 일의 성격상 각계각층의 연하장을 받는다. 그동안 책상 한쪽에 모아두었던 연하장을 들춰본다. 하나같이 인쇄·종이의 질 등이 뛰어나다. 외국카드에 비해 손색이 없다. 도안도 통일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백두산 천지 전경을 비롯,일출이나 까치·학그림,십장생도 매화꽃 및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사진 등을 넣어 저마다 특색을 살리고 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연하장은 신년 및 크리스마스 인사를 겸한 양수겸장의 성격을 띤 것이 많았다. 「Merry X­mas and Happy New Year」가 정해진 문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M­erry X­mas」란 부분이 모습을 감추었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기독교 신자에 관계없이 전 국민이 들뜨던 시절과 달리 크리스마스가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 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하장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그것도 소식이 없던 친구나 가족·친지 등에게서 오거나 정성이 곁들여 있는 연하장을 받으면 더욱 그렇다. 손수 그림을 그리는 등 디자인을 하거나 화선지에 붓글씨로 쓴 연하장,편지형식으로 한장 한장 직접 쓴 연하장은 그 정성에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고 고마움을 간직한다.

올해는 아쉽게도 이런 연하장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반대로 실수투성이에 판에 막은 문구의 연하장이 늘었다. 어수선한 사회상을 반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연하장을 손에 들면 한결같이 「Season`s Greetings」나 「근하신년」이란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근하신년」이란 한문도 영어에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펴보면 「지난해 보살펴 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이하여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란 똑같은 글귀가 영어와 함께 실리고 보낸 사람의 이름과 사안이 곁들여 있다. 사인도 직접 쓰지 않고 인쇄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런 연하장은 고마움과 반가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름이 틀리고 사인조차 하기싫어 비서 등이 대필한 것이 드러나는 연하장보다는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연하장이 아무리 계절적인 의례라고 하더라도 틀림이 많은 연하장이 불쾌함을 남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심한 것은 한사람이 여러장을 보내올때이다. 명부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한사람에게서 서너장이 온다. 두장은 보통이고 최고 4장까지 온 것이 금년의 기록이다. 정성이 넘치기보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부 정치인이다. 바쁘고 보낼 연하장이 많다보니 아르바이트 학생 등을 고용해 이를 보내는 모양이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일을 처리했으며 이런 실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심장없는 연하장을 받으면 심장이 답답해진다.

연하장이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물망초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지만 이런 사람은 차라리 잊고 싶다. 정치인은 혀에 달린 것까지 심장이 두개라고 일컬어진다. 이제는 그 심장마저 잃어버린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치계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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