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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시위」/대일 징용피해소송 박칠봉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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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시위」/대일 징용피해소송 박칠봉씨(탈)

입력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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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무성의 보다 우리의 나약함 씁쓸”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대) 산하 「피해보상위원회」 부위원장 박칠봉씨(70)는 일본총리가 방한한 16일에도 일제만행의 피해자에 대한 법적 보상확답을 얻어내기 위해 시위에 나섰다.

구랍 6일 도일,일본 동경 지방법원에 피해보상청구소송을 내고 귀국한 박씨는 4년동안 일본군에 끌려갔던 피해자중 한사람.

전남 고흥군 고흥읍이 고향인 박씨는 42년 징용당한 병든 아버지 대신 군속으로 끌려갔다. 만주 흑룡강성의 관동군 336부대에서 학대와 중노동에 시달리던 박씨는 2년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현지에서 징집영장을 받아 사병으로 신분이 바뀌어 삼강성의 3909부대 기관총중대에 배치됐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가 적인지 모른채 싸워야했던 박씨는 종전직전 말라리아에 걸려 야전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었다.

병원에서 일본 패망방송을 듣고 중국군에게 무장해제 당한 박씨는 이듬해초에야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귀국했으나 고향은 일제의 핍박으로 「너무도 가난해져」 그때부터 광주·서울 등 대도시를 떠돌며 뿌리뽑힌 삶을 살았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보상요구는 커녕 제대로 말한마디 못하는 사회적 냉대속에 살아야 했던 것이 한스러웠다』는 박씨는 80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결성되면서부터 피해자료 수집일을 도맡았다.

『돈 몇푼 더 받으려고 추운데 눈총 받아가며 시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박씨는 『자국민에게는 모든 피해보상을 해준 일본정부가 1백만명 넘는 한국인 징용자의 피해를 무시하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 문제』라고 분개한다.

박씨는 『그러나 정작 유가족들을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일본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보다도 반세기도 지나기전에 일본의 힘에 다시 눌려 정당한 요구주장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의 나약함』이라고 씁쓸해했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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