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선거의 해다. 선거문화가 엉망이다보니 새로운 선량,새로운 대통령 등 선거에 의한 정치의 물갈이에 대한 기대보다는 선거가 가져오는 경제·사회적 누수현상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대통령이 법에 실시시기까지 명시된 기초 및 광역지방단체장 선거를 연기하겠다는데 대해 일부 여론조사에서 50%를 약간 상회하는 다수가 지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국민의 상당수가 동조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려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일본·서구 등 선진국 같으면 4대선거가 아니라 10대 선거라도 한번에 치른다. 대통령의 지방단체장선거 연기가 단순히 경제·사회적 부담에 대한 염려뿐만 아니라 12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현행의 임명직 지방단체장 아래에서 실시,유리한 결과를 기대해 보겠다는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것은 굳이 야당인 민주당의 성난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간파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 의해 압도되는 것 같다. 현직대통령이 스스로 현행법의 위반을 자인하면서 지방단체장선거의 연기를 제안했던 것은 여론의 추인을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거중첩의 해를 맞아 국력누수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거의 부작용을 극소화하자는데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이 지난 10일 사실상 그의 마지막 연두회견에서 국정과 선거의 차단을 극명하게 선언한 것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국정의 역점을 경제안정과 국제수지 개선에 두고 자금이 제조업에 흐르도록 그 흐름을 바로잡고 특히 선거로의 유출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재무부·청와대사정 등 관계정부기관은 부정한 정치자금의 차단방안 등 강도있는 후속조치를 내놓았다. 김영일 대통령사정수석비서관은 지난 13일 노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검찰 등 사정당국은 국세청·은행감독원들과 긴밀히 협조,법이 허용하고 있는 국고보조금,선관위기탁금,정당수익사업수입금,후원회지원금 또는 당비이외의 어떠한 형태의 정치자금 모금이나 요청,알선행위에 대해서도 관련된 정치인은 물론,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까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단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미 14대 총선과 관련,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있는 사람은 총 25명. 과거의 예로보면 선거사범은 정치적으로 처리돼 왔던것이 관행이다. 자금의 왜곡을 시정하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려하는 것은 법집행의 임의성이다. 정부기관의 법집행이 과거에 선택적이고 굴절적이었던 사례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던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의 연두회견에서 언급이 없어 아쉽다고 생각되는 것은 공무원들의 신분보장이다.
공무원에 대한 자리보장은 현재 법에 의한 제도적 보호를 받고 있으나 통치권자가 정치적으로 이를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의 해에 국정누수의 방지에는 공무원의 자세와 기강견지가 필요불가결하다. 이번뿐만 아니라 현행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한 앞으로 계속 중첩선거를 치르게 돼있다. 우리가 대통령책임제를 선택하고 있으나 5년 단임제,같은당이 집권해도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이에따라 정부의 핵이 물갈이하게 돼있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 경제,안보,외교 등 국정의 계속성과 안정성이 요구된다. 직업공무원제의 명실상부한 정착과 강화가 필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선진국에서는 관료체제가 국정을 이끌어 간다. 우리나라에서 법률상 대통령이 임명권자로 돼있는 공무원은 5급 이상 3만여명이라 한다. 차기정권을 맡을 대통령 후보들도 직업공무원의 신분보장을 공약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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