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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세아이 잃고 이제 딸 하나뿐/중국교포 권영수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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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세아이 잃고 이제 딸 하나뿐/중국교포 권영수씨 부부

입력
1992.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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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술에 마지막 기대”/「뽀빠이」 후원… 병원입원/수술론 못고쳐 장기 약물치료뿐/무일푼… 곧 비자만료 고민중국교포 부부가 놀라면 까무러치고 까무러치면 죽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아이를 셋이나 잃었다. 병명도 모르는채 하나 남은 딸을 살리려고 발만 동동 구르던 권영수(44·중국 흑룡강성 제당기계공장 총무대표) 김정선씨(41·흑룡강성 성건소학교 중국어교사) 부부는 천우신조로 79년부터 심장병어린이 돕기운동을 벌여온 한국어린이보호회의 후원을 받게돼 오홍양(11·성건소학교 5년)을 부천 세종병원(원장 박영관)에 입원시키고 조국의 선진 의술에 온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1일 입국,4일 입원한 오홍양의 병명은 선천적으로 유전되는 「Long QT」라는 희귀·난치병. 심장의 수축·이완시간이 정상인보다 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갑자기 놀라거나 격한 운동을 할 경우 급사를 유발하는 무서운 병으로 수술로도 완치되기 어렵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모두 살아있으면 여섯이어야할 오홍양 가족은 이 해괴한 심장질환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첫 희생자는 둘째 설화양(사망 당시 3세)이었다. 두살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방에서 까무러친 설화양은 까무러치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78년 6월 졸도한 뒤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2년뒤인 80년 3월엔 까무러치기를 수십번하다 끝내 첫째 옥화(당시 9세)이 또 숨졌다.

두 아이를 잃은뒤 권씨 부부는 오홍양 오명군 남매가 무사히 자라나기만을 기원했으나 오명군도 3세때부터 까무러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10월 겨우 9세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권씨 부부는 전재산을 털어 중국 제일이라는 북경의 협화병원과 동인병원 등을 찾아다녔지만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진단의 전부였다.

체념과 절망에 빠져있던 권씨 부부는 90년 11월 부천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엔 심장병어린이를 고쳐주는 단체가 여럿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부부의 애절한 편지는 그동안 3백명이나 심장병어린이를 고쳐준 한국어린이보호회 회장인 뽀빠이 이상용씨(47·서울 서초구 반포4동 70의1)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시도된 방한은 까다로운 출국절차 때문에 1년이 다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사이 오명군이 숨지고 말았다.

마지막 아이 오홍양은 심하게 까무러친 적이 없고 겉보기에 밝고 쾌활하지만 아직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병실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부모는 혹시 딸이 놀랄세라 숨소리도 크게 못낸다.

하나 남은 자식을 꼭 살려서 돌아오라고 이웃 친지들이 모아준 돈으로 산 녹용 등 한양재마저 김포세관에서 빼앗긴 권씨 부부의 재산은 90년 친척방문때 권씨의 외삼촌 송한길씨(72)의 소개로 알게된 서울 도봉구 수유동 서원사 주지 석효란스님(70)이 주고간 2만원이 전부다.

권씨는 『오홍이의 병을 고치지 못하면 우리 부부도 더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을 것』이라며 『딸애는 아내에게 맡기고 막노동일이라도 찾아야 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홍양의 주치의인 세종병원 고재곤 소아과장(38)은 심장구조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므로 수술로 고칠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 과장은 『약물치료를 하려해도 한달후면 비자가 만료되는 오홍양에게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며 치료방법을 찾지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다.<부천=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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