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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동/밖에서본 한국(한상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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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동/밖에서본 한국(한상진칼럼)

입력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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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선거의 해다. 선거를 앞두고 권력 이동문제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는 소련·동구 같은 단절모델이 아니라 구체제로부터의 전환이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연속모델에 속하지만,그 가운데서도 이행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물론 우리가 근거없이 깔보는 경향이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민주화가 정치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

속도가 느릴뿐 아니라 근래의 추세를 보면 인권상황의 악화,제도정치의 파탄,과거 집권세력의 준동,재벌의 정당결성 추진 등 방향이 혼미스럽고 민주화 과정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치의 보수 회귀가 너무 지나치다.

실질적 민주화의 부진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선거제도·정치자금·정당운영의 실태를 볼 때 절차의 면에서도 공정한 게임을 위해 개선되어야할 점이 많지만,특히 권력주체의 변화로부터 시작해서 민주화의 혜택을 사회집단들에 골고루 분배하는 실질적 사회개혁이 그야말로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우리는 선거의 해를 맞이하여 어떻게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것인가의 과제와 함께 지난 30년간 특정지역에 집중된 권력을 여하이 이동·분산시키면서 세계의 촉망을 받는 한국적 민주화 모델을 만들 것인가의 중차대한 과제에 부딪친다. 그 핵심은 물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제도화에 있지만 권력이 기존주체와는 완전히 다른 세력으로 수직·이동하는 것도 차선책으로서 의미가 있다.

예컨대 스페인에서 그랬던 것처럼,우리나라에서도 만일 지역성을 떠난 새로운 젊은 기수가 정치를 주도해간다면 이것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한 기이한 특징은 왕년의 민주화 투사가 오늘의 체제 승계세력과 결합한데 있다. 따라서 이들 외부 수혈집단이 과연 차기 권력주체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비상한 관심이 쏠릴수 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진정 이렇게 된다면 이것은 세계사에서 참으로 특이하고 흥미로운 연속이행모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리하여 좋건 싫건 간에 모험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이들 집단이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보는 시각이 반드시 고운 것만은 아닌것도 사실이다.

암울했던 시대에 이들이 쌓아올린 민주화 공적은 훗날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그럼에도 8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야권분열에 이어 90년의 3당 합당은 어쩌면 젊은세대에게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심각한 교란이자 배반처럼 느껴지는 면이 강했을지도 모른다. 그뒤 이들은 고르바초프를 흉내내 신사고를 외쳤고 새로운 시대의 창조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여권이 자신만만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이들이 변신하는 순간부터 여권안에는 내분과 권력암투가 끊어질 날이 없었고 국회운영마저 날치기 통과같은 악습을 계속했다. 또한 그들의 변신은 극심한 정치적 허무주의와 사회규범의 파괴를 가져와 온갖 병리현상을 심화시킨 원인이 되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어디서나 정치는 역시 현실이다. 이점에서 우리의 시각은 열려져 있어야 한다. 숱한 과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결국 일정한 절차를 거쳐 여권후보의 지위확보에 성공한다면 이들이 던진 승부수의 도전성과 파격성,대담성이 새롭게 평가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들이 시도한 모험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개혁의지가 분명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않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발전의 기회로 받아 들이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환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는 유권자가 결정할 문제이지만 경쟁의 틀이 일단 이렇게 잡히면 이행과정이 보다 순조로운 다른 나라들처럼 민주화가 한결 빨라지고 그 방향도 보다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다양한 이행모델을 살펴볼때 의미있는 사회개혁은 오직 권력주체의 실질적 변화로부터 가능해진다는 이론이 성립될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실질적 민주화를 촉진시킬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실기를 했건 오판을 했건 아니면 힘이 부족했건 간에 실패한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인의 역사의식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절차를 중시하되 실질을 직시하면서,과오가 확인되면 더 큰 과오를 피하기 위해 원상으로 복귀하는 용기와 겸허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만일 그들이 연속이행모델에 담긴 역사의식을 상실한채 일본 자민당식 집권체제의 들러리로 포섭되는 것을 결국 용인하고 만다면,개혁이나 민족통일같은 아무리 화려한 수사를 앞세운다 하더라도,역사의 심판은 가혹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오늘날 빨리 변하고 있다.

밑으로부터 성장하여 물밀듯이 올라오고 있는 국민의식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우리모두 의식하면서 우리가 아직 민주화의 벅찬 과정에 있음을 새삼 상기해야 하겠다.<서울대교수·뉴욕 컬럼비아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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