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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늘리자… 한국일보 캠페인 3년(함께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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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늘리자… 한국일보 캠페인 3년(함께사는 사회)

입력
1992.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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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에도 “이웃축복” 기도/새벽종 칠때면 「박복한 딸」 걱정/묵주들고 “이젠 평안한 죽음을”/“일도 못하는데 취로사업 돈받기 면목없어”/무의탁 서말녀할머니무의탁 할머니 서말녀씨(73·한국일보 89년 1월11일자 보도)는 서울 도봉구 미아6동 1266의 330 돌산 꼭대기 달동네의 반평도 못되는 움막에서 또 외롭게 새해를 맞았다.

물가인상에 따른 거택보호자 생계비의 인상분 1만여원,89년 연초 신문보도된후 들어온 컬러TV 1대,지병인 당뇨와 위궤양의 악화따위가 변화의 전부이다. 3년전 뜻밖에 청와대에 초청돼 상상도 못하던 대통령을 만난 일이 새롭다.

가파른 산길이 얼어붙으면 서 할머니는 고절감속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겪어야 한다.

서 할머니의 방에는 달력이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이어지는 삶에 달력은 의미가 없다.

고향 광주에 대한 기억은 너무 아득해 화석처럼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신혼 첫달이 지나기도 전에 일본에 돈벌러 간다며 나간뒤 소식 끊긴 첫 남편 박씨를 생각하며 서 할머니는 『내가 지지리도 못나보였던 때문이겠지』라며 원망을 삼킨다.

떠돌이생활 6년만에 만난 두번째 남편 신씨와 딸 하나를 두고 산지 2년여만에 남편이 유부남임을 알게됐던 서 할머니는 몇달간 고민한 끝에 신씨를 본처에게 돌려보냈다. 그후에 겪은 고생은 「삼국지 7편은 쓸 정도」이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서 할머니는 『아무렴,잘한 일이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핏덩이를 업고 곳곳을 헤매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을 떠올릴땐 자신도 모르게 문밖을 나선다. 어둔 밤길을 더듬듯 걸으며 살속을 파고드는 매운 바람이라도 맞지 않으면 가슴이 온통 재가 되고 말것 같기 때문이다.

서 할머니는 움막집앞 폭 50㎝ 남짓한 길바닥에 앉아 저 아래 밤길을 달리는 차량의 불빛을 하염없이 보곤 한다. 이 달동네까지 흘러온지 8년째. 손바닥만한 방에 끼여 앉아 화투놀이며 옛 얘기를 나누던 동네친구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한점 혈육인 딸마저 남편과 헤어진 뒤 어머니를 찾아보지 못할 만큼 불행하게 살고 있다. 서 할머니는 딸 얘기를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추워지면 다시 방안으로,답답해지면 또 밤길로 들고 나기를 수차례. 새벽6시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서 할머니는 묵주를 감아쥔채 성모상앞에 무릎을 꿇는다. 『남은 삶이 평안케 해주시고 잠들듯 평화스런 죽음을 주소서』,『에미를 닮아 박복한 딸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동사무소에서 지그바는 쌀과 이웃들이 가끔 가져다 주는 찬거리로 끼니는 이어 가지만 약값을 감당하기는 벅차다.

몸져 눕더라도 돌봐줄 이없는 생활은 아픈 것이 가장 두렵다. 약값이라도 벌려고 새마을취로사업에 나가보지만 쇠약해진 몸으론 견뎌내기가 어렵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돈받기가 면목이 없어 서 할머니는 『이 일도 이젠 그만두어야 겠다』고 한숨짓는다.

그러나 서 할머니는 새벽기도와 일요일의 미사참석을 거르지 않고 있다. 찬바람에 비까지 내린 성탄절과 새해 첫날에도 기운을 내어 성당엘 다녀왔다.

자신의 삶에서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기원하면서 이제 몇번 남지않았을 성탄절을 쓸쓸히 보냈다.

한밤중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지나가는 취객이겠거니』 하고 생각할 정도가 됐지만 그래도 서 할머니는 수저를 서너벌 준비해 놓고 『누구라도 들러주면 따뜻한 밥 한술이라도 들게하고 싶다』고 밤에도 방문을 잠그지 않는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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