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적인 열강의 각축시대가 한반도에서 재현될 것인가.「팍스아메리카나」를 주도하고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당초 일정을 한차례 연기하는 우여곡절 끝에 신년벽두부터 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그런가하면 정치대국화를 기치로 내건 미야자와 내각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 일본외무장관이 서둘러 중국을 방문했다.
호주 싱가포르에 이어 5일부터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부시 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전환기적 핵심 현안에 대한 그의 구상을 털어 놓을 것이다.
또 평소 소신있는 외교정책을 공언해온 와타나베 장관은 새해들어 등소평의 중국을 다른 어느나라의 외무장관보다 먼저 방문했다. 엔화의 위세에 걸맞은 외교적 지분확대에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올법한 발빠른 행보이다.
92년 새해가 밝자마자 경쟁적으로 시작된 미·일의 이같은 외교행보를 두고 1백여년전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인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다툼을 연상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인가.
그러나 「태프트가쓰라밀약」으로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도모한 19세기 당시의 미일양국의 정책과 오늘날 국익 우선주의에 입각한 미일 양국의 외교정책은 소름이 돋을 만치 일맥상통하고 있다.
정치군사대국과 경제대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과 일본은 동유럽과 「붉은제국」 소련을 관통한 대변혁의 물결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에서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주는 「교두보」를 미리 확보해 두고 싶을 것이다.
19세기 당시 한반도에 눈독을 들인 미·로·청·일·독·불 등 7대 열강중 미·일 양국이 이미 주도권 경쟁에 나섰고 포스트 코뮤니즘시대의 러시아 공화국과 마지막 공산대국인 중국도 한반도에서 한치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주변강국의 이해가 난마처럼 얽혀있는 현재의 한반도 주변정세는 시간적·공간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적인 열강각축 시대를 또한차례 몰고올 공산이 크다.
특히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한반도의 퇴행적 모순구조는 구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외관계를 수립해 나가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 침략과 냉전의 고통이 중첩된 한반도가 또다시 열강의 각축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새해의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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