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없어진 소련」에서 새해를 맞는다. 모스크바의 한가운데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실감한다. 옛 소련을 대체할 독립국가공동체의 사무총장으로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흔하다.영향력있는 주간 모스크바뉴스지는 공동체결성을 논의한 지난 알마아타회담이 미국의 환심을 끌기위해 베이커 방문에 때맞춰 대책도 없이 마련된 졸작이라고 노골적으로 꼬집는다.
미국문화의 소련 「정복」은 예상보다 속도가 빠르다. 소련 TV에서는 미국의 대표적 토크쇼인 「필도나휴」가 그대로 방영되는가 하면 글자풀이게임인 「휠 오브 포천」은 「볼가」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놓은 소련판으로 개작되어 진행된다.
미국을 상징하는 담배 「말보로」를 문 청바지차림이 최고의 패션이 된지는 이미 오래이다. 여기에 입맛마저 미국식에 길들여져 있다. 이미 소련 현지공장을 통해 기득권을 가진 펩시와 지난 12월 새로 상륙한 코카콜라는 모스크바를 두고 자기들끼리 불꽃튀는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패스트푸드 맥도널드 햄버거점은 별미를 찾는 소련인들의 발길로 늘 만원이다. 이로인해 소련이 가장 아끼는 문호의 이름을 딴 푸시킨 광장은 이제 맥도널드 광장으로 뒤바뀌어 불려지고 있다. 광장끝의 러시아영화관에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오락영화중의 하나인 터미네이터가 한장 인기다.
이런 가운데 바딤 바카틴 전 국가보안위(KGB) 의장이 미국대사관 새 청사내 도청장치 위치가 담긴 비밀문서를 미국측에 넘겨준 일은 최후의 항복문서를 건네준,즉 미국에 완전백기를 든 상징적 사건으로 이곳 언론들은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팍스아메리카시대를 연 미국의 현실은 소련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미빛만은 아니다.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자동차산업의 대표주자 GM사가 「크리스마스 대학살」로 불리는 대량해고 사태를 빚어야 할만큼 불황과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대외정책은 국내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대규모 통상단을 대동한채 한국방문에 나선 부시 대통령이 풀어놓을 보따리가 자못 궁금해진다.<모스크바에서>모스크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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