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은 민족주의의 해였다. 구차한 예를 들 필요없이 「슬라브 민족주의」가 초 강대국 소련을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러한 규정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 「자기민족의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민족주의가 「민족을 넘어선 계급이익의 실현」을 목표로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조국,소련을 삼켜버린 것이다.크렘린궁에 적기를 대신하여 올라간 깃발은 슬라브민족을 상징하는 러시아의 3색기였지 독립국가공동체(CIS)를 대변하는 깃발이 아니라는 사실로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슬라브 민족주의」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야누스적 속성을 갖고있다고 흔히 지적된다. 억압받는 소수민족에게 민족주의는 해방된 미래를 약속하는 「복음」이다. 그러나 약소국에 있어 강대국의 민족주의는 「묵시록」의 예고이다.
89년 8월24일,발트 3국의 국민 2백만명이 엮은 총연장 6백㎞에 달하는 「인간사슬」은 「국제주의」로 위장된 억압된 소련 체제의 본질을 폭로했다는 점에서,또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90년 10월의 독일통일은 강대국에 의한 인위적 분단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의 「복음」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민족주의 「묵시록적」 성격이 부각된 한 해였다. 이라크의 민족주의는 걸프전에서의 패배로 인해 「아랍은 하나다」라는 이상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인접 쿠웨이트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유고슬라비아의 민족주의는 이 나라를 「발칸의 공동묘지」로 만들고 있다. 한해전까지만 해도 통일을 성취해낸 독일민족에 찬탄을 금치 못했던 세계인들은 올해부터 부쩍 늘어난 외국인들에 대한 공격에 나치즘망령의 「재림」을 우려한다. 또한 기를 쓰고 자위대의 해외파병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 일본정부의 자세는 과거의 피해국들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족주의가 과거 30년대와 같은 「집단광증의 시대」로 세계를 몰고가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를 뒷받침해 줄수 있는 긍정적 사태진전도 있었다.
숙명론자가 아니라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민족주의의 「묵시록적」 성격을 극복하는 것을 92년 인류의 공통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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