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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선택(정경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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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선택(정경희 칼럼)

입력
1991.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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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는 모두 죽음으로 돌아가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도다』 부처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 설법을 적은 「열반경」에 보이는 한 구절이다. 열반경에는 이밖에도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치는 구절들이 많다.『목숨이 잠깐도 정지하지 아니함이 산위의 물과 같아서 오늘은 존재한다해도 내일을 보증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래서 『눈 깜짝할 사이에 중생의 수명이 4백번 났다 없어졌다 하느니라』고 깨우친다.

한해의 끝마무리를 짓는 연말은 음력으로는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자,지난한해를 반성하는 계절이다. 『임금은 검은 수레를 타고 무쇠 빛깔(철색)의 말을 멍에하며 검은 기를 세우고 검은 옷을 입으며 검은 옥(현옥)을 착용한다고 했다(예기·월령). 그것은 모든 것이 얼어붙은 한겨울에 자연의 섭리에 복종함을 뜻한다.

충격적인 사건이 줄줄이 이어졌던 91년을 우리는 오늘 마감하게 된다. 쉴틈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에서 우리는 20세기의 끝판에서 「세기말」을 눈으로 보는듯한 위기의식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문제는 지나간 1년이 아니라 다가서는 새해에도 우리의 위기감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에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92년은 우리 역사상 최대의 선거의 해가 된다. 대통령·국회의원에 지방자치단체의 광역과 기초단체의 장을 뽑기위해 네차례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돈봉투로 치르는 금권선거에 과연 얼마만한 돈의 홍수가 쏟아질 것인가. 아마도 「5조원이 풀릴 것」(동서경제연구소)이라는 계산은 상당히 낙관적인 계산일지도 모른다. 최고 20조원까지 보는 계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92년은 한국이 거덜나느냐,계속 굴러가느냐 하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어느쪽을 가느냐하는 것은 바로 우리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91년을 마감하는 오늘은 그런 엄숙한 선택을 앞둔 엄숙한 순간이다. 미국태생의 영국시인 엘리어트는 읊었다.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건흔히 끝이요/끝맺음은 시작이라/끝은 우리가 시작하는 곳이니』

산위의 물처럼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에 끝과 시작을 만든 것은 인간의 일일뿐이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시작이요 끝』이라고 신약은 하나님의 말을 이른다. 진리엔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끝마무리의 순간에 어쩔수 없이 「사생결단」의 새로운 선택을 앞두고 몸서리칠 만큼 긴장해야 하는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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