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물결로 「진실」 구원/인간존중 새시대 열어/고르비의 종말로 행복했던 시절도 끝”소련역사는 물론 세계사를 뒤바꿔 놓은 고르바초프의 퇴장에 즈음해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소련의 대표적 지식인의 하나인 알렉산데르 카바코프는 고르비 7년에 대한 평가를 영국의 가디언지에 기고했다. 8월의 쿠데타를 예고한 「스토리텔러」와 고르바초프 개혁의 실패를 그린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란 소설로 서방세계에 유명해진 그의 글을 요약했다.<편집자주>편집자주>
고르비만큼 지식인들을 매료시킨 지도자는 역사상 없을 것이다. 85년 봄 그가 등장했을 때만해도 나는 그에 대해 냉담했다. 그가 처음으로 내건 질서와 원칙의 회복,알코올과의 전쟁은 나를 두렵게 했다. 소련 역사에서 질서라는 말은 곧 전제주의를 연상케했기 때문이다.
1년후 그의 연설에는 인간적인 기조가 깔리기 시작했다. 흐루시초프를 연상케하는 발언을 하곤 했다. 그리고 생활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의 관심을 끈 첫번째 변화는 언론의 자유였다. 금지됐던 책들이 출판되고 레닌을 다른 각도에서 다룬 연극이 공연됐다.
그때에도 나는 흐루시초프가 그랬듯이 고르바초프도 멀지않아 억압의 족쇄를 조이리라 믿었다. 정말 봄이 왔다고 믿는 동료에게 나는 곧 겨울이 다시 온다고 말하곤 했다.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전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글라스노스트였다. 신문 잡지는 스탈린과 브레즈네프를 비판하는 기사로 가득찼다. 과거의 비판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개인의 실정이나 흠을 비판하는게 아니라 체제의 본질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나의 생활도 크게 달아졌다. 살아 생전 빚을 보지 못하리라 생각하던 소설들이 출판됐다. 고르바초프 개혁의 실패를 그린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나라에서 출판돼 돈도 벌었다. 유대인이라는 신분이지만 모스크바 뉴스지에 일자리도 얻게 되었다. 오랜 빈곤에서 벗어나 소련 기준으로는 상당히 부유한 생활도 누릴 수 있게 됐다.
많은 소련 지식인들이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우리는 드디어 우리의 시대가 왔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고르바초프의 아이들」인 셈이었다. 지식인들은 고르비에 협조할 태세가 되어있었다. 그가 우리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지식인들은 일반국민의 실정은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별개의 집단이 아니라 국민의 한 부분이다. 지식인의 삶이 나아졌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삶도 조금은 나아졌음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조각의 빵이 행복을 가져다주듯 한줌의 진실도 보통사람에게 마찬가지의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다.
고르비 시대의 변화는 계속됐다. 계급보다 인간의 가치가 더 존중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구의 조용한 혁명이 이어졌고 사유재산이 부활됐다. 전체주의적인 노예상태에서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 계속됐다. 지식인들은 행복했다. 역사상 이처럼 행복하고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시절은 일찍이 없었다.
발트 3국과 그루지야 사태,토지사유제의 도입,법령개폐의 지연 등 실정이 있었지만 지식인들은 고르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사회주의적인 선택」을 고집할 때도 공산당내 보수파를 무마하려는 제스처로만 이해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가졌던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고르비에 대한 사랑은 올해 1월의 그루지야사태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흐루시초프의 부다페스트 사태를 연상케 하는 이 사건에서 고르비도 민주주의를 위해 반민주주의적인 방법을 택하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했다. 고르비가 「계몽공산주의」를 고집하자 실망한 많은 지식인들은 옐친진영으로 돌아섰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지식인은 모든 정치지도자에 대해 회의하는 지식인적인 입장을 택했다.
고르비 시대의 종말을 지켜보면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우리는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퇴진에 즈음해 어떤 이는 찬사를,어떤 이는 비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위대한 인물로서 자리를 떠나고 가장 잔혹했던 사회체제를 타파한 인물로 국민에게 영원히 기억되리라는 점이다.
나는 그가 앞으로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소련 정치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정치인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업적만으로도 장래 그의 비석에는 이런 글귀를 새길만하다. 「공산주의를 정복한 이에게 구원받은 이들로부터」<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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