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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물러가다(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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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물러가다(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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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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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중국의 입법원을 방문했다가 그림자처럼,유령처럼 겨우겨우 걸어다니는 노의원들을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야당들이 노의원들을 노적(늙은도적)이니 미적(밥도적)이니 부르며 물러가라고 공격한다는 신문기사를 읽긴 했지만 그처럼 노쇠한 공직자들을 국비로 유지하는 나라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더욱 놀란것은 회의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벨소리였는데,소리가 그렇게 큰 것은 노의원들이 대부분 귀가 어둡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그들이 의원에 당선된 것은 국민당이 중국본토를 지배하던 1947년의 일이며,49년 장개석총통을 따라 대만으로 피란온 그들은 『선거구의 유고로 선거를 치를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의원직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장개석 부자와 국민당에 충성을 바치면서 총통선출과 헌법 개정권을 갖는 국민대회와 국회격인 입법원을 장악해 왔다.

8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투쟁이 한창일 때,대만에도 민주화운동이 싹트기 시작했고,그 종신의원들은 재야와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모욕적인 은퇴압력에도 완강히 버티던 그들은 더이상 시대의 요구를 거스리지 못해 금년말까지 모두 물러나게 된다.

대만의 정치현주소를 상징하던 그들 원로의원 5백70여명을 홀가분하게 떠나보내고 대만은 지난 21일 44년만의 총선을 치러 3백25명의 국민대회 대표를 뽑았다. 「안정과 번영」을 내세운 집권국민당이 71%를 차지 압승했고,「총통직선 및 대만독립」을 내세운 제1야당 민진당은 24%에 머물렀으나,이번 선거로 대만은 국민당의 권력독점을 깨고 뒷걸음 칠수없는 민주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49년에 내린 계엄령이 87년에야 해제됐을 만큼 숨막히는 정치적 억압속에 자유중국 국민이 숨을 쉬고 경제적 번영을 누릴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국민에게 「하나의 투표권 대신 하나의 상점」을 보장해주는 「상업의 자유」를 표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누구나 원하면 가게를 열고 기업을 차릴수 있도록 돕는 정책아래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대재벌이 이끄는 경제가 아니라 중소기업이 이끄는 탄탄한 경제를 이룩했고,오늘날 세계 제1의 외환보유국이 됐으며,1인당 GNP 8천달러로 우리를 앞서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격렬한 민주화·반미 데모와 87년 대통령선거의 뜨거운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찬탄을 금치 못하던 대만인들은 이제 44년만에 총선을 치르고 조심조심 민주화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게 될지 최대의 무역경쟁국인 우리로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편집국 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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