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새 지평이 바야흐로 열리려 한다. 남북한 관계에 새로운 태동이 막 시작되었다. 대결과 배척의 시대가 물러감인가,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피어 오른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이런 열매를 맺게 하였는가. 1일 천추로 통일을 갈망한 겨레의 비원일 뿐이다.서울의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총리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통일문제와 남북관계에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분단 반세기를 매듭짓는 무거운 역사의 의미를 상징하는 합의서이다. 그동안 7천만이 겪어온 고통을 돌아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합의서에 담긴 뜻은 무겁다. 자주·평화·민족이라는 통일원칙을 천명한 7·4공동성명이 선언적 의미로 남북대화의 디딤돌 구실을 했다면,화해·불가침·교류의 합의는 실천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이제야 남북은 금단을 허물어 내고 서로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가교의 설계를 엮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외 정세의 변화에 대승적으로 대응하는 민족의 자긍심을 충족 시켰다는 뜻에서 더 한층 환영을 표하게 된다. 고위급 회담에서 보여준 남북의 신축성과 적극 자세는 겨레의 희망을 복돋울만하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눈녹듯 사라진다.
우리는 엄숙한 역사의 현실 앞에서 흥분과 기대의 속단을 삼가려 한다. 과거의 쓰라인 경험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합의가 곧 실행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휴전선에 평화의 비둘기가 둥지를 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산가족의 설렘이 아직은 기다리는 인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까다로운 핵문제가 어떤 난관이 될지 예측이 어렵다. 교류협력과 정치·군사문제의 선후를 둘러싼 이견이 과연 어떤 타협을 만들어낼지도 미지에 속한다.
화해·불가침·교류는 합의 이상으로 실행이 요구되는 내용이다. 남북한 당국은 실현가능한 것부터 차례로 풀어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경제공동체의 구성은 직교류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산가족의 연락과 상봉 또는 단계적 실천방안이 앞서야 실효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정상회담의 실현은 더욱 그렇다. 기초적인 정지작업이 확실하게 밑받침되어야 실질효과를 바랄 수 있다. 종래와 같이 국내외용의 정치목적이 개입하는 유혹과 함정은 미리 제거되어야 성사에 뜻이 있다. 화해와 고류는 순수성이 없으면 오히려 역효를 내기 알맞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통일문제가 시급할수록 냉정과 침착이 중요하다. 발길이 무겁고 멀다고 느낄때 오히려 발걸음이 빠르고 가벼울 수가 있다. 남북의 당면과제는 감성이 아닌 합리와 정당한 논리로 풀어야 견고한 결실을 얻게 된다고 확신한다. 이 시대의 진운은 뚜렷하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리 스스로가 굴려야 할 것이다. 그 책임이 남북한 당국자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