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면피용 사죄때 한쪽선 해외파병 추진/보상외면 망언일쑤… 철저반성 독일과 대조【동경=문창재특파원】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총리는 6일밤 총리관저 출입기자들에게 태평양전쟁에 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미 대통령이 8일 하와이의 진주만에서 열리는 태평양전쟁 50주년 행사에 참석,전쟁중 일본계 미국인을 집단수용한데 대해 공식사과하리라는 소식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아직까지 진주만 기습에 대해 공식사과하지않고 있는 일본의 대표로서 피해자로부터 거듭 사과를 받기만해서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것 같다.
공식성을 띠지않은 이 발언속에서 미야자와 총리는 『미국과 아시아 각지의 여러분에게 참기 어려운 타격을 입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깊이 반성해 전후에는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왔다』면서 내년 1월 부시 대통령이 일본에 오면 세계평화 신질서조성에 대한 공헌책을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말하는 이른바 「공헌」이란 것은 자위대를 분쟁지역에 파견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인적공헌」과 동의어이다. 그는 관저발언에 앞서 6일낮 참의원에서 자위대의 해외파병근거법인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의 조기통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야자와총리의 반성발언이 주목을 끌지못한 것은 그말이 마지못한 비공식발언이기도 하지만 자위대 파병을 역설하던 입에서 나온말이기 때문이다. 일부 신문들이 반성이 아니라 「반성」이라고 비아냥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50주년을 계기로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부전결의」 채택을 보류한것도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제1야당인 사회당이 국호의 부전결의 채택을 조건으로 일기를 일본국기로 인정하겠다고 제안했을때 자민당은 결의 채택을 약속했었다.
와타나베(도변미지웅) 부총리겸 외무장관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부전결의가 채택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당내 극우세력들이 반발하자 「없었던 말」이 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식민지주의국가들끼리의 대결이었으므로 미국에 사과할 필요가 없다』 『네덜란드와 영국에 사과할 필요도 없다. 네덜란드가 자기네 식민지에 행한 비인도적 행위를 사과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없다』 『부전결의는 헌법에도 적혀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
이런 반발에 어떤 반론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의채택이 보류된것은 반대의견이 1백% 받아들여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나라가 사과하지 않았으니 우리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치졸한 논리가 통하는 곳이 일본의 지도층이다.
그러나 그렇지않다. 미국은 2차대전중 「적성시민」이라고 해서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지역에 밀집해있던 일본계 시민 12만명을 수용소에 집단수용한것을 여러차례 사과했다. 레이건 대통령시대인 88년 미국은 수용자들에게 12억5천만엔의 보상금을 지급했고 대통령 자신이 공식 사죄했다.
그리고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또 사과발언을 할 예정이다.
독일이 유태인에게 가한 전쟁범죄를 철저히 보상하고 사과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지난 10월에도 독일은 폴란드인 강제연행에 대한 개별보상기금 5억마르크(4백억엔)를 책정했다.
2차대전후 연합군의 전쟁재판인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독일의 강제연행행위가 「인도에 관한 죄」로 단죄되자 70년 서독연방법원은 독일의 전시강제연행을 「국제법에 위반되는 인권모독행위」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일본은 국내법상 보상근거가 없으며 피해국 정부와의 개별조약과 협정에 따라 보상의무는 소멸됐다는 억지를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35명이 집단으로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한데 대해 일본 외무성은 『종군위안부들의 쓰라린 체험에 관해서는 동정의 심정을 금하기 어렵지만 일반론으로서는 일한 양국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의 기본조약과 관련 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고 코멘트했다. 개인이 입은 피해보상청구를 재산권 청구문제로 보는것이다.
진주만 기습 50주년을 맞은 7일 일본은 너무 조용했다. 「개전 50년을 생각하는 회」같은 일부시민단체들이 쓸쓸한 집회와 심포지엄같은 행사를 가졌을뿐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별다른 의식없이 역사적인 날을 맞았다. 7일 하오 동경 지요다(천대전)구의 일본교육회관에서 열린 시민집회에서는 6일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한 한국인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 호소는 메아리없는 고독한 절규일뿐이었다.
7일 아침 일본의 한 신문 1면에 실린 컬러사진 한장이 진주만 50주년을 맞는 일본의 표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본인 관광객 한떼가 진주만에서 전함 미주리호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이다.
다케시타(죽하등) 전 총리는 최근 한국특파원들과 만난자리에서 『하와이에간 일본의 젊은여성들이 진주 세일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면서 오늘의 젊은세대에게 진주만은 「관광과 쇼핑」의 대명사로만 비쳐가고 있다고 실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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