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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기습 50년 그후…격변하는 세계판도(21세기 태평양시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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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기습 50년 그후…격변하는 세계판도(21세기 태평양시대:2)

입력
1991.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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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속 일본」… 엔화가 삼킨 하와이/경제·인종·문화적인 「식민지화」/본토 반일무드에 오히려 “냉담”/부동산에 「자본폭격」… 호텔 42% 일인 소유/일 관광객이 주요 수입원… 일어 사용 필수【호놀룰루=김수종특파원】 진주만공격 50주를 하루 앞둔 6일 와이키키 거리에는 「그날」의 생존자 수천명이 벌이는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이날 바다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졌다. 퍼레이드 구경꾼중에는 수많은 일본관광객이 끼어 있었다.

지금 하와이 주민들은 일본계건 백인이건 진주만 사건 50주를 맞아 되살아나는 듯한 미국내의 반일 무드에 그리 달가운 표정이 아니다. 일본 없이는 하와이 경제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가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지난 수년간에도 하와이는 일본인 투자와 관광객에 의해 활발한 나날을 보내왔다.

전행후 50년간 달라지는 일본의 위상을 미국에서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이 하와이다.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하와이는 일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한국문제에도 정통한 미국의 저명한 일본 전문가 마빈 울프는 지난 83년 「일본의 음모」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미국과 일본 사이에 현재 상태의 무역불균형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21세기초 미국과 일본의 경제관계는 피식민지와 식민지의 형태로 굳어지게 될 것이다』

하와이의 경우만 본다면 울프씨의 예상은 기가막히게 맞아들어가고 있다.

하와이 부동산은 일본의 대미흑자폭이 컸던 지난 80년대에 일본기업과 일본인 손으로 속속 넘아갔다. 지난 89년 한해에만 와이키키해변의 하와이 리전트 호텔을 4억달러에 매입한것을 비롯,호텔 콘더미니엄 등에 12억5천만달러의 일본자금이 흘러 들어왔다. 호놀룰루 시내에 있는 어마어마한 알라모아나 쇼핑센터는 일본자본과 일본 건설회사에 의해 지어졌다. 또 일본인들은 골프장이나 농장 등을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뿐만 아니라 하와이·마우·몰로카이섬은 온통 엔화의 융단폭격 목표가 됐다.

현재 하와이의 호텔중 42%는 일본인 소유다. 객실수로는 2만여실로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또 86∼90년의 외국인 주택 및 콘더미니엄 매입 6천채 역시 거의가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빌딩·상가 등에도 같은 기간동안 일본자본이 약 15억달러 투입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와이에 일본인이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초부터. 당시는 주로 호텔을 세우는 것이었으나 80년대들어 무역흑자폭이 커지면서 연간 2억달러씩 투자됐다. 특히 86년엔 엔화 강세로 연간 20억달러가 하와이에 쏟아졌다. 86년이후 90년까지 하와이 부동산 투자에 투입된 일본자본은 93억달러에 이른다. 85년까지 투자된 액수를 합치면 일본인 부동산 투자액은 무려 1백10억달러,전체 외국인 투자의 90%를 차지한다.

또한 일본인 관광객은 하와이 경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 되고 있다.

하와이를 찾는 일본관광객은 연간 1백40만명에 24억달러를 쓰고 있다. 이는 전체 관광 수입 94억달러의 25%를 넘는다. 따라서 진주민 50주년 기념행사를 바라보는 하와이 사람들의 눈은 본토인과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와이를 찾는 미국인들은 하루에 1백26달러밖에 쓰지않는 반면 일본인은 3백23달러를 쓴다. 호텔 요금을 빼고도 하와이 관광업소들이 일본인에 거는 기대를 대단하다.

모든 관광명소의 안내판은 일본어가 병기돼 있다. 일본 해군에 의해 궤멸했던 진주만의 애리조나기념관 입구에 일본어 표기 간판이 이같은 하와이의 아이러니를 말해주고 있다.

하와이에서 장사를 하려면 백인이건 동양인이건 가벼운 일본어라도 해야할만큼 일본어가 안통하는 곳이 없다. 와이키키 명소의 하나인 인터내셔널마켓은 업소의 80%인 3백여 점포가 한국인의 소유이다. 이들 상점에서는 한국 사람이라도 주인이 한국사람인 걸 알기 전까지는 일본말로 흥정을 해야 한다.

진주만 50주년을 맞아 한국의 한 단체는 6일 와이키키에서 반일 데모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이를 안 한인상인들은 질겁을 하고 이를 말렸다. 그것은 정말로 큰일 날 일이었던 것이다.

하와이를 「미국속의 일본」으로 느끼게 하는 또하나의 요인은 인종구성과 그에따른 일본문화의 유산이다. 하와이는 미국에서도 가장 인종혼혈이 잘돼 있을 뿐아니라 백인이 소수인종인 유일한 주이다. 구태여 인종구성을 분류해 보자면 하와이 인구 1백10만명중 백인이 37만명 33%인데 비해 일본계는 25%만명으로 단일민족 구성으로는 숫자가 제일 많다.

일본인의 하와이 이민은 19세기말에 사탕수수 노동이민으로 시작돼 3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고 전후에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일본계는 거의 이민 2∼3세다. 이들은 모두 미국화 됐고 1세들의 피땀어린 노력결과로 하와이의 지방정계를 장악,사회각계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이노우에 연방상원 의원을 필두로 주의 요직은 일본계가 석권하고 있으며 설령 다른 인종이 지도적 위치에 있더라도 그 밑에는 일본계가 박혀 있다. 하와이에 있어서 일본문화의 대표적 상징은 일본 씨름이다. 하와이인들은 일본씨름(스모)을 좋아한다. 좋아할뿐 아니라 즐기는 경지이다. 얼마전 이곳 지방신문에는 스모경기 기사가 본토인의 최대 관심거리였다. LA램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풋볼 경기를 제치고 스포츠란의 톱기사로 취급된다.

TV방송의 아시아소식 시간이 끝날대도 앵커맨이 「사요나라」라고 작별인사를 스스럼없이 하는 곳이 하와이다. 국민학교에서도 일본문화와 일본관습에 대한 학습을 하는 것이 용납되고 있다. 공동묘지에 있는 일본식 비석도 하와이의 일본풍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들 일본계 미국인들은 또 생각 밖으로 미국화 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일본인들이 80년대 들어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자 이들은 미국인 못지않게 반감을 드러냈다.

하와이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자본에 대한 하와인의 우려는 자못 크다. 자원과 제조업이 없는 관광지로서 일본자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효과가 없는 부동산 투자가 문제만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존 와이헤에 주지사의 경제보좌관인 그레고리 배씨(한국계 3세·하버드대 출신)은 『최근 일본인 투자는 주택,사무실 등 부동산 투자로 고용효과는 거의없이 하와이의 주택비와 땅값만 올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들 대부분의 거래가 동경에서 이루어져 더욱 하와이 경제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프랭크 파시 호놀룰루 시장은 일본인들의 무절제한 부동산투자에 대해 『이대로 일본 투자를 내버려 두면 하와이인은 일본인 소유 빌딩의 수위노릇밖에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와이의 90년 경제는 재정이 4억 흑자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미국내 최저인 3%이다. 일본덕을 특특히 보고 있는 것이다.

7일의 진주만 기념행사가 끝나면 하와이인들은 또다시 일본인들의 발길을 기다릴 것이다.

50년전의 일은 과거이다. 현실은 눈앞에 있고,일본은 그들에게 상상도 못할 고객이다.

그래서 50년전 느닷없이 공습당한 하와이는,진주만은 일본인들에 의해 지금은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미국 본토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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