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신장률 많아야 20%선 잡아/정치외풍 겹쳐 「내실다지기」 주력해마다 이맘때면 이듬해 사업계획을 짜느라 신바람을 내던 재벌그룹들이 올 연말에는 예년과 달리 풀이 죽어있다.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이 5일 연말 사장단회의에서 『올해 경영실적이 최근 수년을 통틀어 최악』이라고 지적하고 계열사 사장단들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야 했던 것은 삼성그룹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그룹의 이날 사장단 회의는 재벌그룹 전반의 연말분위기를 웅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1차적으로는 올해 실적이 아주 저조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내년에는 더 바닥을 때릴지도 모른다는 깊은 걱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주요재벌그룹들의 내년도 사업계획은 한결같이 축소지향적이다.
매출신장목표를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여잡거나 아예 동결하고 있고,투자계획에도 찬바람이 일고있다. 매출신장률의 경우 평년의 25∼30%에서 내년에는 대개 15%,기껏해야 20% 수준으로 억제하는것이 일반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10월까지만해도 92년도 매출목표를 올해보다 20% 가량 늘린 43조원선으로 잡았다가 연말 사장단회의에서 이보다 5∼7% 줄여 40조원 수준으로 깎았다.
사업확장하면 어느 그룹에 뒤질세라 앞장서던 현대그룹도 내년은 예외다. 현대그룹은 내년에 잘해야 매출이 20% 신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매출목표를 40조원으로 하향조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럭키금성그룹은 올해 매출액(20조4천억원) 보다 약간 늘린 25조원선이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우그룹도 20조원 안팎으로 내년 매출목표를 억제,올해 신장률 보다 상당히 낮출방침.
이밖에 선경 효성 롯데 한국화약 등 대다수 그룹들도 지난 10월 잠정적으로 정했던 내년 사업계획의 재조정 작업을 벌여 매출신장률을 당초 20%선에서 10∼15% 수준으로 하향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된다.
재벌그룹들은 시설투자 부문에서도 대부분 절대규모 자체를 올 수준으로 동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산업성장을 선도하는 재벌그룹들이 이렇게 내년 사업계획을 움츠리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년 경영환경을 암울하게 보고있기 때문이다.
각급 연구기관서 내놓고 있는 내년 경제전망에 먹구름이 뭉쳐있고 그룹자체 경제연구소에서 전망하는 경기도 비관일색으로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 조차 아직까지 내년 경제운용 계획을 못내놓고 갈팡질팡 하고 있는 마당에 기업들이 무슨 확신이 서겠느냐는 것이다.
재벌그룹 관계자들은 무엇보다도 내년 경기가 「예측 불가」하다는 점이 기업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측할 수 없는 경제교란 요인들이 대기하고 있어 일단 움츠리고 보자는게 기업인들의 공통된 심리라는 것이다.
우선 4대선거가 겹쳐있다. 정치·선거자금 염출을 기업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고 최근 대통령이 직접 못박은 일까지 있지만 우리정치 현실상 거의 실현불가능한 「구두선」이라고 재벌그룹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역대선거와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이곳저곳을 눈치보며 선거자금을 염출당해 커다란 부담을 안게될 것이 자명하다.
이와함께 최근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재벌그룹들의 경제력 집중완화정책도 내년에 어떤 형태로 가시화될지 몰라 재벌그룹들은 좌불안석이다.
재벌그룹들은 그래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격언을 내년계획에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형성장 보다는 차제에 사업구조 조정을 통한 「내실다지기」에 주력하고 싶은게 재벌그룹들의 내년 사업계획에서 나타나는 대체적 경향이다. 한편으론 눈이올때 쓸지않는다는 심정도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송태권기자>송태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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