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늘어가는 「뺑소니사고」/작년 8천건 612명 희생/검거율 38%,4만 범죄자 활보/시체유기·확인살해도… “반인륜”4만명이 넘는 뺑소니 운전자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않은채 여전히 차를 몰고 다닌다. 자신의 잘못으로 소중한 인명을 상하게 만든 사람들이 백주대로를 버젓이 활보하는 양심실종의 사회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개념조차 희미한 뺑소니 교통사고가 우리나라에서는 갈수록 늘어나고 사망자도 급증해 반인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69년 1천4백9건,80년 3천5백64건,87년 4천7백56건 등으로 계속 증가해온 뺑소니 교통사고는 지난해 8천3백82건을 기록했다.
이로인한 사망자도 69년 2백1명이던 것이 90년에는 3배 이상인 6백12명으로 늘었고 뺑소니사고 집계가 시작된 69년 이후 모두 5천3백12명이 길에 버려진 채 숨졌다.
또 90년에만 뺑소니사고로 8천6백70명이 부상하는 등 뺑소니사고는 연평균 발생건수 8.9%,사망자 11.4%,부상자 9.0% 등으로 엄청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의 치사율은 4∼6%이지만 뺑소니사고는 6∼9%나 된다.
지역별로는 89년을 기준으로 서울이 1천2백64건(20.3%)으로 뺑소니사고 최다발생의 불명예를 기록했으며 경기 7백95건(12.8%) 부산 6백46건(10.4%) 경남 6백30건(10.1%) 대구 5백37건(8.6%) 등의 순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69년 이후 모두 7만3천3백4명이 뺑소니를 쳤는데도 검거된 인원은 38.5%인 2만8천2백33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4만5천71명이 범죄를 숨긴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69건은 단 1명도 검거되지 않아 뺑소니도 「고속」이었음을 보여준다.
뺑소니의 양태 역시 단순히 책임을 피해보자는 자기보호본능 차원을 넘어 증거인멸을 위한 시체유기나 확인살해의 끔찍한 범죄로 변해가고 있다.
병원근처에 피해자를 내려놓고 달아나는 일말의 양심도 이젠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며 차에 치인 사람을 인도에 올려만 주어도 다행이다.
길에 쓰러져 있는 뺑소니 피해자를 뛰따라온 차가 다시 치어 죽게하는 경우가 흔하고 각 경찰서에는 교통사고 피해흔적이 있는 변사체가 야산 하천 등에서 발견돼 뒤늦게 신고되는 사례도 많다.
지난달 23일에는 경기 용인군 외서면 근창리 백암국교 앞길에서 봉고승합차를 몰고가던 권준호씨(27)가 길을 건너던 박의용(77) 김영인씨(64·여) 등 노인 2명을 친뒤 달아났다.
목격자의 신고에 따라 출동한 경찰은 주민 1백여명과 함께 수색을 한끝에 20시간만에 사고지점에서 5㎞ 정도 떨어진 외서면 고안리 야산에서 낙엽에 덮인 시체 2구를 발견했다.
고향인 전남 장성까지 달아났다가 붙잡힌 운전자 권씨는 『노인들을 야산으로 싣고가 차례로 목졸라 살해한 뒤 내버렸다』는 충격적인 자백을 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장 이규창박사는 『조금만 빨리 병원에 왔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는 환자가 많다』며 『특히 겨울철에 길에 방치되면 거의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자가 붙잡히지 않아 보상 한푼받지 못한채 땅을 치며 피눈물만 삼키는 억울함을 겪게 된다.
경찰에 신고해봐야 끈질긴 탐문으로 스스로 목격자를 찾아내야 하고 사고차량이나 운전자의 윤곽을 토대로 다시 「서울 김서방찾기」가 되풀이되며 성의있는 경찰수사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뺑소니 검거의 대부분이 목격자가 직접 따라가 붙잡거나 경찰에 인상착의와 차량의 특징을 신고해 붙잡힌 경우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유일한 뺑소니 추방책은 결국 전국민의 투철한 신고정신인 셈이다.
그리고 모든 운전자들의 양심회복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신윤석기자>신윤석기자>
◎「시민회본부」 80여회원 야무진 활약/“뺑소니 지옥까지 추적”/11개월만에 32건 거뜬히 해결/부친잃은 회사대표 직원과 시작/협박·외면뚫고 범인 잡을땐 보람
「뺑소니차 목격자를 찾습니다. 피해자는 이재우 정영창(육군중위 중사),사고일시와 장소는 91년 3월3일 21시20분께 오류동 태경주유소앞 횡단보도,가해차는 흰색 르망 서울1 드×××」.
뺑소니차에 치여 본인이나 가족이 사망 부상 등 억울한 피해를 당했는데도 하소연할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시민단체가 전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 1월초 서울 강남구 논현동 비궁맥스톤비누제조회사(대표 김기수·48) 직원 10여명이 모여 결성한 전국 뺑소니추방시민회본부는 11개월 남짓한 기간에 1백42건을 접수,22.5%인 32건을 해결했다.
회사직원뿐이었던 단체에는 피해자가족,사고목격자 등 무료봉사회원 80여명이 참여해 명실상부한 시민운동단체가 됐다.
시민회 본부결성을 주도한 비누회사 대표 김기수씨도 뺑소니피해가족.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농사를 짓던 김씨의 아버지는 72년 상경길에 서울 성동구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 앞길에서 뺑소니택시에 치여 57세로 숨졌다. 이 사실을 모르고있다 뒤늦게 한 목격자의 연락으로 경기 성남의 야산에서 아버지 시신을 찾았던 김씨는 뺑소니운전자들을 잡아야 한다는 집념을 키우다 76년 시작한 비누제조공장이 본궤도에 오르자 뺑소니추방운동을 시작했다.
사재를 털어 서울 동작구 상도1동 677에 조그만 연락사무소를 차리고 증거확보용 비디오카메라,녹음기 무전기 등 장비를 마련했고 영업부사원 10여명이 적극 호응해 매일 2∼3시간씩 시간을 쪼개 발로 뛰는 회원이 됐다.
이어 뺑소니피해자가족과 사고목격자 등이 무료봉사회원으로 가입했고 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7개 지사를 거점으로 현장조사 및 목격자탐문,차량조회부터 용의자추적까지 조직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며칠이고 뺑소니현장을 지키고 용의자가 숨을만한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사망자가족들은 현상금을 내걸면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려 하는데 시민회본부가 보상을 바라고 활동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수사기관도 아닌 시민회본부가 뺑소니운전자를 잡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목격자가 알려주는 불완전한 차량번호를 토대로 자동차관리사업소의 협조를 받는 것이 쉽지 않고 며칠동안 사고현장 주변을 돌아다녀도 끝내 목격자를 찾아낼 수 없는 경우에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또 회원들은 가해자 주변을 탐문하고 다니다 오해를 받거나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범인인줄 뻔히 알면서도 증거가 없어 손을 쓸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아들을 치어죽인 뺑소니차를 시민회본부와 함께 찾던 어머니가 「목격자찾기」 가두캠페인을 하다가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눈물겨운 사연까지 있다.
회원들은 『시민들이 사고를 목격하고도 경찰에 불려다니는 것이 귀찮거나 가해자측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기피하고 있다』며 『뺑소니차를 고발하는 시민정신이 뺑소니를 없애는 가장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
무보수로 24시간 달리는 시민회본부의 회원들은 어려움속에서도 가해자를 찾아 피해자와 합의토록 주선한 뒤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 모든 고달픔을 잊고 새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뺑소니추방 시민회본부의 연락처는 8141213∼4.<남대희기자>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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