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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MBC 공동 연중캠페인(교통사망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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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MBC 공동 연중캠페인(교통사망 줄이자)

입력
1991.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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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했던 집안서 웃음실종 9년째/백광수씨 윤화로 반신불수/타고가던 지프,트럭 정면충돌/가끔 혼미… 식구들에 짜증만82년 9월 교통사고를 당해 혼자서는 일어설수도 없는 1급 장애자가된 백광수씨(53·대구 수성구 상동337)는 TV에서 교통사고 뉴스만 나오면 어쩔줄 모르며 불안해 하고 있다.

대구 MBC TV 송신소장으로 부인 박절자씨(48)씨,1남3녀,어머니 김월계씨(73)와 행복하게 살았던 백씨는 어느날 갑자기 아무 잘못없이 가족들에게 짜증이나 부리는 못된 가장이 돼 버렸다.

가족들의 정성으로 앉아 있을 수 있게 됐고 기억력도 조금씩 회복됐지만 반신불수의 백씨는 9년째 2평 남짓한 방에서 천장만 보고 있어 애간장을 녹인다.

사고당시 국교 4학년이던 막내 승훈(18)이가 어느새 성장,지난 3월 금오공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그동안 기쁜일이야 더러 있었지만 가족들이 함께 함박웃음을 터뜨린 기억은 없다.

백씨는 82년 9월29일 팔공산에서 있는 MBC 송신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회사지프를 타고 대구로 올때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1주일만에 만나게될 가족들 생각을 하다 「꽝」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 천평리의 국도에서 마주오던 8톤 트럭과 지프가 정면으로 충돌했던 것이다.

뇌를 다쳐 두달이 넘도록 혼수상태였던 백씨는 눈동자를 조금씩 움직이며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가족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병원측은 왼손이 완전 마비됐고 말도 할 수 없으며 정신도 정상인의 상태가 되긴 힘들다고 했다.

온몸에 호스를 꽂은채 1년여를 병원에서 보낸 백씨는 정신이 들때마다 『집에 가서 죽겠다』고 고집해 83년 10월말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했다.

8년동안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야 했던 백씨가 받은 보상금은 퇴직금까지 합쳐 7천여만원. 산업재해로 분류된 탓에 자동차보험회사로부터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생활비와 자녀학비,매달 40만원이상인 치료비는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실질적인 가장이된 박씨는 살고있던 2층집을 팔고 대구 수성동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남은 돈과 보상금 일부로 조그만 구이집을 열었다. 어머니 김씨도 아들의 치료비를 조금이라도 벌려고 아침9시부터 밤11시30분까지 식당의 찬모로 나갔다.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했던 박씨가 술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 결국 소중한 돈만 날리고 장사에 실패했다.

어머니와 부인은 교대로 온갖 잔심부름과 병간호를 했지만 백씨는 늘 부인에게 『보상금을 떼먹고 도망가려한다』고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욕설을 퍼부어 울게했다.

빚을 얻어 5년전부터 서문시장에서 조그만 옷가게를 해 4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는데도 부인에 대한 백씨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어머니에게 조차 성한 오른손으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제정신이 아닌 아들에게 이유없이 맞을 때는 피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으려고 수성못에 수십번 갔었지만 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이 불쌍해 일찍 죽음 영감만 원망하다 돌아왔습니다』

백씨가 17세되던해 홀몸이 되어 파출부 등으로 일하며 남매를 키운 김씨는 『사고전까지만해도 효자라고 칭찬받았던 아들이 애꿎은 며느리만 욕하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울먹였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어머니와 부인은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때문에 가족들은 지난해 3월 백씨와 어머니를 백씨의 여동생 영선씨(38)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는 25일 성탄절에 결혼할 백씨의 장녀 수정양(25)은 아버지 대신 먼 친척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해야 한다.

수정양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화풀이를 하면 차라리 안계셨으면 할때도 있었다』며 『어머니가 「너희들도 모두 잊어버리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고 울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대구=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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