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림잡아 20년 가까운 십수년만에 총성이 멎은 캄보디아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거대한 「화해」의 세계적 흐름을 타고 모처럼 합의에 이른 20년 대리전쟁의 종말이 어쩌면 깨질지도 모른다는 의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 때문이다.그것은 피비린내나는 학살극의 장본인 키우 삼판이 분노한 프놈펜시민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난 사건이다. 그는 75년 4월 미국이 지원하는 론놀정권을 밀어내고 프놈펜을 차지한 뒤 3년 동안 2백만의 무고한 시민을 죽음의 땅으로 내몰고,그중 적어도 1백만을 죽게한 사람이다.
27일 피를 흘리며 프놈펜에서 쫓겨나는 그의 몰골에서 우리는 「학살자」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캄보디아 국민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그가 캄보디아 최대의 무장세력을 이끌고 있는 아이러니야말로 국제정치의 부조리라고 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키우 삼판이 이끄는 크메르 루주파는 추정병력 3만∼4만으로,적어도 병력규모에서 3만2천의 프놈펜정부군보다 우세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학살극의 피로 물든 크메르 루주가 이처럼 캄보디아 최대의 무장세력이 된데에는 냉전시대 국제질서의 「힘의 논리」가 작용해왔다.
원래 크메르 루주는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해서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훈센정권에 맞서왔다. 또한 미국도 베트남전쟁 패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크메르 루주를 포함하는 「반프놈펜 연합」을 지원해 왔다. 미국이 크메르 루주의 재집권을 우려해서 손을 끊은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결국 캄보디아의 학살자 키우 삼판은 미국,중국의 반베트남·반소라는 냉전시대 힘의 논리에 편승해서 명맥을 유지했고 군사력을 유지했던 것이다.
파리협정은 시아누크공을 정점으로 훈센정권과,비공산 손산파 그리고 시아누크파를 합쳐 4개 무장세력의 「연립」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다. 이제 키우 삼판의 프놈펜정착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최대무장세력인 크메르 루주가 과연 파리협정을 계속 인정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13년전 베트남이 지원하는 훈센정권이 프놈펜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학살자에 대한 캄보디아 국민의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살자는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돼서는 안될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이 정말 캄보디아의 안정적인 평화를 원한다면 학살자를 정치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재검토해야할 것이다. 특히 그 정치적 후견인인 중국은 지지를 철회해야할 것이다.
우리 자신 6·25때 같은 비극을 겪었던 기억이 있는만큼 사태를 각별한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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