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서예계의 대부… 국전서 수차례 특선/「청남문화재단」 설립 전국 휘호대회 열기도원로서예가인 청남 오제봉선생이 국내 서예계에 큰 족적을 남긴채 27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청남선생은 오로지 글씨를 쓰는 즐거움으로 일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치하 1908년 경북 금릉에서 태어난 청남선생은 15세 되던 해에 출가,경남 진주 의곡사에서 주지로 22년 등 37년간의 승려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서예에 정진해왔고,환속이후 정열적인 활동으로 영남지역 「서예계의 대부」로 존경을 받아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청남선생은 해방직후인 지난 49년 제1회 국전에서 삼베로 표구한 작품으로 입선해 화제를 모으는 등 국전에서 잇달아 특선과 입선을 휩쓸었고,59년 제8회 국전에는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생의 작품들은 전국의 유명사찰,비석,공원,관공서 등에도 많이 남아있다.
부산 용두산공원 비문,밀양 표충사,부산 태종대·충렬사,진주 촉석루,서울 조계사·봉은사,최근의 서울 「예술의 전당」 등.
이같은 지위를 인정받아 지난 80년에는 국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국전 초대작가,한국미협 부산지부장,부산미전 운영위원장 및 고문,영남 서예인연합전 연 8회 회장,부산시 문화위원,문화재위원 등을 지냈다.
청남은 이같은 활발한 활동으로 지난 62년 부산 눌원문화상,64년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86년에는 대한민국 사회교육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선생은 지난 89년 「청남문화재단」을 설립,올해로 3번째 전국휘호대회를 개최했고 친필 서예작품과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골동품 등 1천5백여점을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청남선생은 지난해 문을 연 중앙공원 자연석 비문에 『무한한 글씨의 즐거움,평생 싫어짐이 없다』고 써 서예와 함께한 자신의 인생역정을 글로 남겼다.<부산=박상준기자>부산=박상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