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하오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전농(전국농민회 총연맹) 주최로 열린 농민대회는 울분과 한숨을 토해내는 한풀이 마당이었으나 대회와 가두행진을 끝 낸 뒤에도 농민들의 표정에서는 한풀이 끝의 후련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꺼칠한 얼굴에 허름한 옷을 입은 전국 91개군 농민 2만여명은 이날 새벽부터 관광버스 3백여대에 나뉘어 타고 대회시작 2시간전인 상오11시부터 모여들었다.
지역별로 색색의 머리띠를 매고 수천개의 깃발을 든 농민들은 도열한 경찰옆을 지날때 다소 주눅든 모습이었으나 집회장에 들어서면서 「최대의 농민대회」 규모를 확인하고 안도의 박수를 치며 서로 격려했다.
풍물패의 공연과 개회사,격려사에 이어 열린 본 행사에서 농민들의 절규는 처절할 정도였다.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농촌의 내일에 절망한 10대까지 농민들은 할 말이 정말 많았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농사 지어 잘 살자는 게 아닙니다. 먹고살게만 해 달라는 겁니다』,『추곡수매에 그렇게 인색하던 정부가 지금은 미국 쌀을 수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벼부대로 만든 허수아비옷을 입고 충남 마산서 온 김모씨(68)는 『농민들이 무서운 거여. 동네 사람들도 이젠 악에 받쳐 무슨 짓이든 할 참이여』라며 「쌀값보장」 「미국쌀 수입 반대」구호를 목청껏 따라 외쳤다.
그러나 농민들은 끝내 신명나는 표정이 아니었다. 전남 보성에서 온 박모씨(38)는 『우리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겄소. 하도 답답해서 모인 것이제』라면서 서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미안해 했다.
3천여평의 공원을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며 깃발을 흔들어 대던 농민들은 동대문,종로를 거쳐 대학로에 이르는 가두 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손을 잡고 뛰다시피 따라간 농민들의 행진은 추운날씨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힘이 없고 초라해 보였다.<김철훈기자>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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