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으로 한해 1백만부짜리 베스트셀러가 나왔다는 것(본보 26일자 13면)은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엄청난 고가의 사치품이 잘 팔린다면 공분을 자아내게 하지만,책장사가 재미를 본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수치스런 평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종래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은 한해 한두권에 미치지 못했다. 책을 안 읽어야 오히려 잘 살다는 이상 풍조가 번져 책과 담을 쌓고 지내온게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젠 확실히 달라져 가고 있다. 정신의 허기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내적인 충실감이 없이는 자기 발전의 한계에 부딪침을 깨닫게 된것이다. 장식용 전집보다는 단행본이 단연 활기를 찾았다는 것은 내적 갈구와 자기충실의 갈망이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해 1백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의 등장은 그 의미를 결코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될줄 안다. 허세의 거품을 거두려는 계발과 노력의 단초로 봄직하다. 급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열심히 책을 읽어야 그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출판문화의 의미는 새롭게 부각된다.
베스트셀러는 실상과 허상이 다른 경우가 있다. 무조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힌다고해서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뜬구름을 잡는 독서가 찬양할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독서경향은 우선 양적으로 절대부족의 공복감에 시달려왔다. 인구에 견주어 도서발간은 미미한 지경에 머물렀다. 교양없는 민도의 책망을 들을만한 상태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단행본시장이 차츰 성시를 이룬다는 것은 건전한 자질향상과 발전의 조짐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이만한 바탕이 구축되었으며 이제 출판문화의 양에서 질의 변화라는 변증법적인 발전을 추구할만한 단계에 왔다고 판단된다. 단행본 발간의 괄목할 급성장이 이것을 밑받침하리라 믿는 탓이다.
「어떤 책은 맛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어떤 책은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고 영국의 철학자가 권고한바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독서의 첫 단계인 잡식성은 내면의 성숙과 더불어 질의 선택이 불가피하다. 흔히 베스트셀러는 시류에 영합하고 눈앞의 실익을 겨냥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처세술이나 외형적인 성공담이 그런 실례에 든다.
어떻든 최근의 독서경향은 전문화를 지향하는 바람직한 측면이 서서히 나타난다. 경제서적 등 특정분야의 전문도서가 활발하게 나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출판문화도 분기점에 섰다. 수요가 느는만큼 공급쪽에서도 창의력의 발휘가 따라야 한다. 번역에 의존하는 타성을 일신하고 우리것과 우리것의 탐구를 찾아내는 노력이 왕성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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