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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걸프식」 대응 안된다/이장희 외대 교수·국제법(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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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걸프식」 대응 안된다/이장희 외대 교수·국제법(특별기고)

입력
1991.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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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핵개발 저지를 둘러싸고 대내외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1일 끝난 제23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는 『북한의 핵개발 위협과 불확실성이 사라지고,이 지역내의 안보가 완전히 보장될 때까지 오는 93년부터 시작되는 2단계 주한미군 감축을 연기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 체니 미국방장관은 22일 주일미군 감군도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국방장관은 21일의 공동기자 회견에서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군사적 대응방안은 검토되지 않았고 유엔,국제원자력기구(IAEA),그리고 중·소·일 등 우방국들을 통해 최대한의 외교적 압력을 북한에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양국 국방장관이 최대한의 인내로써 북한 핵개발 저지를 위한 평화적인 외교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한데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양국장관의 공동성명만으로는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미국의 학자 및 정치인 사이에 북한의 핵저지에 대한 방안으로 무력사용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강경론이 점차 강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미 하원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위원장 솔라즈 의원)는 지난 21일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청문회를 열고 관계전문가로부터 핵개발 저지 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여기에 증인으로 나선 리처드 펄 전 국방차관보는 『북한이 IAEA의 안전규정에 호응한다해도 이미 핵개발이 임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 활동으로는 핵개발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고 『이같은 긴박한 상황을 감안할 때,무력사용만이 유일한 수단』이라는 위험스런 주장을 했다. 더욱이 그는 무력사용시에도 효율성을 위해 우방국들간의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변,무력사용을 미국 단독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해,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다. 또 일본 산케이 신문은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20일 의원용으로 작성한 「북한의 핵무기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이 건설중인 핵재처리 시설에 대비,북한에 대한 거점 폭격을 검토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달린 문제가 우리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리고 우리와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미국의 학자나 미국의회에 의해 모험적이고 무책임하게 논의되고 있다니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

왜 한반도의 운명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가 미국의 보수·강경·모험주의자들의 「걸프식」 대응장난에 놀아나고 있는가? 국민은 이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고,그리고 불안하다. 우리국민은 두번 다시 이 땅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원치 않는다. 이러한 불행한 일을 막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분단의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는 유엔에 동시가입하지 않았던가.

한반도가 세계사에 편입된 20세기초 이래 국제정치 질서에 큰 변동이 있을 때마다 한반도는 항상 그 소용돌이의 중앙에 있었다. 그래서 식민제국주의가 국제정치질서의 근간이었을 때 미국은 1905년 7월29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묵인했으며,냉전 이데올로기가 근간이었을 때에는 한반도는 분단과 그 파장으로 6·25동란을 겪어야 했다. 한반도는 지금 냉전구도의 와해,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3번째의 큰 국제정치질서 변동을 맞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칫하면 한반도가 다시 한번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전쟁터가 될 위험성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1981년 유럽에서도 서독에 미국의 핵 중거리탄 퍼싱Ⅱ가 배치되고,소련에는 서독을 겨냥한 SS­20이 배치되면서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다. 동서독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쟁이 발발했었더라면 독일과 독일민족은 순식간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판이었다. 이때 서독의 슈미트 총리는 동독의 호네커 총리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그들은 독일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도록 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우리보다 입지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민족자결의 의지를 천명했다. 그리고 서독은 유럽의 긴장완화를 위해 유럽에서의 군축에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우리민족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다. 한반도의 전쟁터화는 결코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저지를 위해 군사적 대응을 고려하기 앞서 정치적·외교적·경제적으로 모든 가능한 평화적 수단을 강구하기를 촉구한다. 이러한 노력이 지역적·국제적 압력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미국은 한국내의 핵무기를 완전 철수하는 한편 남한내 미군기지 핵사찰을 허용하고,한국에는 더 이상 핵무기가 없다는 한·미 핵부재 공식선언을 조속히 내놓기 바란다.

물론 이것은 북한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미확인 보도이지만 북한이 노태우대통령의 11·8 비핵화선언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정부 소식통을 빌려 전하고 있고 지난 20일 전인철 외교부 부부장도 오는 12월의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의 실현가능성을 언급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북한은 21일 윌리엄 테일러 미전략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을 통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한·미 양국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북한의 새 동향이나 북한의 최근 대내외적 사정을 볼때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 저지에 대해 미국의 경직적인 태도를 완화시키는 한편 민족내부적으로 북한을 설득시키는데 모든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제야 말로 남북 권력의 실세인 정상이 무조건 만나,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땅에 전쟁이 발발해서는 안된다는 약속을 민족과 세계앞에 하기를 바란다. 이 길만이 우리민족의 문제를 남북한이 주체적이고 현명하게 처리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난 5월27일 북한외교부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발표했을 때,북한도 변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맛봤다. 우리 한민족은 북한이 핵사찰을 수락한다는 두번째의 신선한 충격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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